재미 한국도예가 이재원
글+사진 최석진 _ 도예가
도예가 이재원과의 인터뷰를 위해 미국 미시건 주의 메이슨시에 갔다. 고속도로 진입로를 통해 소도시로 들어서자, 저 멀리, 지평선 끝에 보이는 나목에 이르기까지 펼쳐진 눈 덮인 평지, 아무도 발길을 들여 놓지 않은 흰색 카펫 같은 벌판이 시야에 가득 들어 왔다. 하늘이 유난히 넓게 보이는 아담한 도시 한 가운데 있는 작가의 집, 흰 창 옆에서 마주한 그녀의 작품들은 미시건의 흰 겨울을 담고 있었다.
이재원은 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도예를 공부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몇 년 뒤 1999년 네덜란드의 유러피안 아트센터Europees Keramisch Werkcentrum로 가서 거주 작가로 작업했는데, 작가에게 주어진 넓은 작업실 한 구석에서 이전의 금속공예가가 남겨놓은 가느다란 철사들을 발견했다. 그것을 하나하나 수거해 벽에 걸고 그녀가 사서 모아두었던 흰색 튤립, 프리지아 등의 꽃잎을 꽂아 놓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꽃잎의 수는 늘었고 또 그 꽃잎들은 말라갔다. 가느다란 철사줄에 매달린 작은 꽃잎을 보면서 그녀는 꽃잎마다 옛 시간의 추억을 담고 있는 듯하다고 생각했다. 미국으로 돌아와 백색과 푸른 안료를 넣은 포슬린으로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수의 꽃잎을 만들고, 다시 이 백자 꽃잎을 금속 줄에 하나하나 연결해서 작품 「Frail Hope, Internal Distance Object I」을 완성했다. 흰빛, 다채로운 연한 푸른빛의 점토 꽃잎으로 둘러 쌓인 몸체는 빛을 산란하며 마치 화환같이 감겨있다.
2000년에는 더욱 작은 꽃잎으로 전시장 바닥 전체를 뒤덮은 「Between the Petals」를 설치하기도 했다. 또 한 작품 「Frail Hope, Internal Distance Object IV」는 그녀가 인지한 꽃잎이 더욱 도식화된 모습으로 변화되어 필라먼트 줄에 연결하고 오래된 냉장고 물받이 그릇에 소복이 쌓아 놓은 작품이다. 그녀는 꽃잎을 손으로 한 가득 건져 올리는 것은 마치 지나간 추억을 불러내 다독이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핀칭 기법으로 만든 긴 꽃잎 줄에는 작은 꽃잎마다 작가의 손으로 일일이 매만진 시간의 긴 여운이 남아 있는 듯하다.
멀리서 보면 벽에 가득 꽃수를 놓을 것 같은 작품, 「Wall Petal」은 2005년도 작품이다. 「Wall Petal」은 Wall Flower 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구어체인 Wall Flower 는 파티에서 상대가 없이 벽에 혼자 서 있는 여자를 부르는 말이다. 그녀는 모두에게 공통된, 고립된 존재로서의 우리 자신의 의미를 찾으며 스스로를 외부와 차단한 작업실 공간에서 작은 꽃잎과 셀 수없이 긴 시간을 나누었다.
작품 「Frail Hope, Internal Distance Object VI」는 디스크 모양의 얇은 포셀린 판을 세로로 나란히 기대어 벽에 설치한 3미터 길이의 작품이다. 유약을 입히지 않고 산화와 환원으로 번조 되어 흰색의 따뜻하고 차가운 톤을 번갈아 보여주는 지름 12센티의 작은 판들은 그 반복된 원심력으로 인한 설명할 수 없는 에너지를 지니며, 한편으로는 지평선의 고요한 풍광 같이 시선을 원경으로 이끈다. 미국의 평론가 조오지 티쉬George Tysh는 “정지해 있는 물체가 여전히 움직인다거나 또는 영원한 움직임의 실체를 나타낸다”라고 하며 제리 크레이그Gerry Craig는 시선을 작품의 위로부터 아래로 내려다보면 옆으로 세워져 있는 얇은 디스크 사이의 작은 공간, 미세한 검은 여백에 대해 “신비스럽고 어떤 제한을 나타내는 듯하며, 이 반복된 판에서 오는 움직임의 조용한 집중은 곧 자연의 힘을 모방한다.”고 하였다.
이재원의 작품들에는 흰색이 공유되어 있다. “작품을 보면 마치 어떤 사람의 호흡을 듣는 것 같이 미시건의 겨울로 들어간다”고 제리 크레이그가 표현했듯이, 이재원은 작품의 백색에 대해 자신이 살고 있는 미시건 주의 긴 겨울에 대한 명상을 설명했다. 그녀는 온통 뒤덮인 하얀 평원, 맹렬하게 추웠던 겨울을 지난 후, 과연 땅속의 씨앗들이 생명을 피울 것인가 하는 자연스런 의구심을 품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봄이 되면 딱딱했던 땅 속에서 머리를 드러낸 새싹에게서 경이로움을 느꼈다. 이런 경험들은 그녀에게 예술가의 생활을 반추하게 했는데, 땅밑의 씨앗은 앞이 불투명한 채 깊은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었던 자신에게 투영되었고 다시 창작의 믿음과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제리 크레이그는 넓고도 고요한 흰 겨울 풍경, “얼어붙은 침묵 속에서 수면 아래의 호흡이 그녀에게 묵상에 이르는 영양분을 제공했다.”며 이 백색 감성에 대해 “가라앉은 흰색”, 또는 “색을 벗긴 반복적인 고요함”이라고 표현하였다.
필자의 “한 작품에 들어가는 부분의 수는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왜 많이 만드는가?”라는 필자의 질문에 그녀는 자신이 깊은 영감을 받은 살링거JD Salinger의 ‘Franny and Zooey’에서의 구절을 인용했다. “처음 시작할 때 우리는 자신이 하는 것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다. 그러나 우리가 처음 해야 할 모든 것은 양quantity이다. 그러면 후에 그것이 스스로 질quality로 변화한다.” 그녀는 “나는 앞길이 불투명한 예술가의 길에서 결국 많은 양을 하다 보면 자아발전의 힘Self-Generating Power에 의해 질로 변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나는 어떤 특별한 목표 없이 다수의 작은 포셀린 부분을 만든다. 소속감, 전체감, 뿌리박은 느낌을 갈망하면서 작업을 반복한다. 나는 장소와 기억의 의식을 창조하고자 하는 희망 속에서 작품을 쌓거나 결합한다.” 라고 설명했다.
이재원은 한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되풀이하고 또 되풀이해서 만드는 긴 시간을 그녀의 유년시절 기억을 떠올리며, 명절 때 여자들이 모두 모여 함께 만두를 빚어 큰상을 가득 채웠던 즐거움이라고 설명했다. 마음과 손과 머리가 같이 동화되어 가슴의 울림을 주는 작품을 살아있는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는 그녀는 필자와 이야기 하는 동안 눈을 한곳에 모으며 자연과의 대화, 어루만짐 그리고 반복됨의 철학을 조금 높은 목소리 톤으로, 천천히 이어갔다. 거실의 커다란 나무 테이블에 앉아 바라본 그녀의 공간은 곳곳에 그녀의 오랜 기다림의 믿음을 지니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도예가로서 자신이 깊은 영감을 받은 버나드 리치의 말을 인용하며 대화를 마쳤다.
“사람이 곧 덕과 악을 가진 그릇이다. 어떤 위장도 할 수 없다.”
“The man is the pot, his virtues and vices are shown therein - no disguise is possible.”
작가 이재원
MFA 알프레드 대학교
BFA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롱비치
15회 개인전
미국, 한국, 뉴질랜드, 네덜란드 등 다수의 전시
현, 미시간 주립대 부교수
사진1.「Frail Hope, Internal Distance Object Ⅲ」
사진2.「Frail Hope, Internal Distance Object I」(detail) 사진3.「Frail Hope, Internal Distance Object I」 1999년 작
사진4.「Between the Petals」 2000년 작 사진5「Between the Petals」(detail)
사진6.「Frail Hope, Internal Distance Object Ⅳ」사진7.「Frail Hope, Internal Distance Object Ⅳ」(detail)
사진8.「Wall Petal」 2005년 작 사진9. 「Wall Petal」(detail)
사진10.「Frail Hope, Internal Distance Object Ⅵ」
필자약력
이화여자 대학교 졸업, 동 대학원 졸업
개인전 8회(한국, 미국)
버지니아 박물관 초청 레지던시 아티스트
이화여대, 버지니아 커먼웰스 대학 강사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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