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Ceramic Art - Artist
토니 헵번Tony Hepburn의
통로, 문Gate
글+사진 최석진 _ 도예가
필자는 지난 여름 아리조나 주 세도나Sedona 국립공원에 갔다. 지도에서 안내하는 대로 고원과 평지를 한참 달렸다. 지리를 알리는 푯말을 지나 길게 이어진 산줄기에 다다르자 멀리 흙빛의 적갈색 산들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장식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산으로부터 근원을 알 수 없는 거대한 에너지를 느꼈다. 바윗덩어리로 솟은 산은 말없이 서 있었지만,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과 열정은 그 곳에 있는 수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채울 수 있는 에너지로 다가왔다. 토니 헵번은 그 산과 같은 예술가이다.
헵번은 1942년 영국의 맨체스터Manchester에서 태어나 런던의 캠버웰 대학Camberwell College of Art과 런던 대학을 졸업했다. 1960년대 영국 도예계는 버너드 리치가 소개하는 기능적 도예가 주된 논의였었다. 헵번은 영국의 록 그룹, 롤링 스톤즈의 음악이 유행하고, 약물이 사회 문제가 되었던 그 때, 자신을 에워싼 문화를 어떻게 예술에 반영할 것인가 생각했다. 퍼포먼스, 드로잉과 청동 조각 등 모든 종류의 예술을 했다. 당시 캠버웰 대학에는 한스 쿠퍼Hans Coper 1920~1981, 20세기 영국이 낳은 가장 영향력 있는 위대한 도예가중 한 명가 가르치고 있었다. 그의 수업시간은 무언가 달랐다. 물레로 기를 완성한 뒤 마무리하면서 전을 수평으로 만들었다. 기존 물레 성형 법칙을 깨뜨리고 새로움을 모색했다. 쿠퍼는 심미적, 미적 가장자리에서 자신 속에 자리한 미감을 발견하며 점토라는 재료를 탐구했다. 장식적 요소보다는 근본 원인을 생각하고, “어떻게” 만드는가 하는 것보다 “왜” 만드는가를 생각Why before How하라고 강조했다. 쿠퍼는 헵번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예술가의 모델이 되었다.
헵번은 30여 년을 유럽에서 지낸 후 미국에 정착했다. 1980년 네브라스카 소재 오마하 벽돌 공장의 초청으로 그곳에 잠시 체류하게 되었는데, 공장의 생활은 매우 열악하여 자신이 익숙했던 작업 환경과는 다른 조건이었지만 그는 그곳에서의 작업이 자신에게 무언가 새로운 계기가 되리라는 잠재성에 매혹되었다. 머지않아 그는 자신을 둘러싼 거칠고 점성이 없는 흙과 벽돌들에 동화되었다. 작은 벽돌 하나 하나는 그에게 개별적인 오브제로 느껴졌고 그는 구부러지지 않는 단단한 벽돌을 가지고 바닥에서부터 쌓기 시작했다. 하나의 기둥과 가로선으로 구성되는 이런 단순한 형태의 건축적 구조는 그가 25년간 끊임없이 되돌아 축조해왔던 하나의 아이콘이 되었다. 헵번은 이런 구조의 단순함이 많은 질문과 해답을 던져주는 여백을 준다고 설명한다. 또한 그는 “우연의 개념은 매우 복잡하며 시간이 흐른 후에야 그에 대한 이해가 가능하다”는 설명과 함께 젊은 시절에 여러 차례 방문했었던 스톤 헨지Stone Henge는 490만평에 이르는 원형의 흙 구조물 한 가운데에 4톤이 넘는 거대한 돌들이 다양한 형태로 세워져 있는 선돌 유적이다. 기원전 2000년경부터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고대 영어로 ‘공중에 걸쳐 있는 돌’을 의미한다를 이야기했다. 햇빛이 떠오르며 넓은 벌판에 비취는 빛은 거대한 돌과 돌 사이 공간을 천천히 채우고 지나갔다. 그에게 게이트는 통과의 의미를 갖기도 하고 때로는 사실적이며, 보이지 않는 곳으로 부터의 철학적 의미를 동반한다. 시간적, 공간적 경계를 암묵적으로 제시한다.
「게이트 위드 볼Gate With Ball」은 준 카네코와 합작으로 만든 작품이다. 앤더슨 랜치 아트 센터에서 작업하면서 헵번이 바닥 부분을 만들었고 한 주 후에 도착한 가네코가 그 위에 기둥을 설치했다. 그 게이트는 초벌한 뒤에 가네코의 작업실로 운반되었고 그곳 작업실에서 같이 유약을 발랐다. 이런 합작은 10여년 간 계속되었는데, 헵번은 이와 같은 작업을 매우 자유스러웠다고 표현했다. 그들은 아무말없이 자신들의 디자인을 벽에 붙여 놓은 채 시작한다. 서로의 계획을 보며 상대의 작업에 무엇을 덧붙일 것인가를 생각하는데, 말없이 교감하며 서로의 에너지를 공유했었던 이런 협력 작업은 그에게 언제나 재미있었고 흥미로웠다. 다른 작가와 공동으로 작품을 만들기도 하지만, 환경이나 장소와 협력하기도 한다. 「산타페 게이트Santa Fe Gate」는 어도비Adobe벽돌로 축조된 미국 남부의 건축물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고, 「샌디에고 게이트San Diego Gate」는 미국과 멕시코간의 국경을 소재로 한 것이다. 「샌디에고 게이트」는 샌디에고 주립 대학에 설치하였는데, 헵번은 적당한 말로 묘사하기는 어려웠지만,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박물관에 홀로 서 있는 구조물은 마치 아무 것도 입지 않고 있는 듯 했다. 그는 구조물이 반사되어 있는 벽에 목탄과 오일 칼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마침내 중력을 가진 실체, 그리고 그림자같이 벽에 부유하는 문, 그 옆에 흐트러진 선으로 된 드로잉으로 완성하게 되었다.
1985년에 만든 「Two Pillars」는, 물병, 깔때기, 나무 상자, 동물의 뿔 등 헵번의 주변에 보이는 여러 물건들을 조합하여 제작하였다. 그가 선택하여 쌓아 올린 구조물은 대부분 나무 재료들인데, 이전에 점토로 만든 것에 비해 비교적 가벼웠다. 그는 그 무게를 이용하고 싶었고, 샌 안토니오에서 전시 할 때 그 구조물을 거꾸로 메달 계획을 했다. 자문을 구한 설치 기술자는 가뿐히 들어올려 설치했다. 천장에 거꾸로 메달린 게이트는 빛을 차단한 공간만큼 바닥에 자취를 남기며, 재료가 가진 물성을 잊은 채 시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크랜브룩 박물관에 설치되었던 「블루 도어 게이트Blue Door Gate」는 3개월이 넘는 작업 과정 후에 완성한 그의 역작이다. 천장까지 맞닿는 푸른색 문을 열면 나무로 엮어진 게이트와 거칠게 마무리되어 손맛이 느껴지는 굽지 않은 항아리가 보인다. 벽면 선반에는 소다 번조하여 다양한 갈색을 띄는 100여개의 두상이 눈에 띄는데, 표정이 없는 얼굴들은 슬립캐스팅으로 완성한 천 질감이 나는 포슬린으로 눈이 가리워진 채 앞을 보고 있다. 사다리 모양의 게이트는 두 종류의 다른 나무재질로 되어있다. 기둥모양 지지대는 제재소에서 껍질이 벗겨져 다듬어진 나무의 ‘속 부분’이고, 가로지른 선반 부분은 나무에서 잘라낸 잔가지로 나무의 ‘겉 부분’이다. 게이트 앞에는 일 미터가 넘는 원기둥형 항아리가 놓여 있는데 그 안에 포프리를 가득 채워 넣어 전시실은 향기를 내뿜었다. 관객은 박물관의 입구를 지나 시야를 가득 덮은 푸른 색 문으로 들어서면 건조되면서 공기 속에 떠있는 흙냄새, 꽃향기, 나무 향을 맡는다. 헵번은 전시가 시작 된 후 일주일 동안 하루 종일 항아리 속에 앉아 있었다. 그는 항아리 속에서 책을 읽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면서 시간을 보내며 관객들이 나누는 대화에 반응했다. 관객에게 보이지 않는 곳에 있지만 다른 사람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전시장의 사람들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기대하지 않았던 어디에선가 들려오는 헵번의 목소리에 놀라기도 하고 흥미로운 반응을 한다. 헵번은 시각적 경험과 냄새, 그리고 그의 존재의 잔여라고 표현하는 목소리 등 미묘한 방식으로 관람자들과 소통하고자 했다. 그는 매일 박물관이 문을 열고 닫을 때까지 항아리 안에 앉아서 자신을 확신해야 했다. 그의 단순한 건축적 모티브는 실체와 믿음, 보이는 것과 가려진 것, 느끼는 것과 드러난 것 등 복수의 의미를 운반한다.
점토는 “재료를 설명하는 가장 정직한 물질” 이라고 말하는 헵번은 자신의 게이트를 설명하면서 중력Gravity이라는 단어를 반복했다. 점토로 중력을 기록한다고 표현했듯이 중력은 그에게 가장 중요한 재료이며 현상이다. 그는 때로는 스톤헨지처럼 ‘쌓기’라는 단순한 법칙에 의존하기도 하고 가마를 만들 때 사용하는 ‘아취 만들기’ 방법을 쓰기도 한다. 헵번은 2007년 중국 시안의 <현대 도자 예술 박물관> 오픈 행사로 그곳에서 2달 동안 머물며 작업할 예정이다. 학교에서 선생님으로 일년이 넘게 헵번을 만난 필자는 그가 아시아 고대 도시로 날아가 그 흙에 내재되어 있는 지나간 긴 시공간을 넘어 또 다른 그의 문을 열 것임을 안다.
토니 헵번Tony Hepburn은 A.T.D. 런던 대학과 N.D.D. 캠버웰 컬리지 오브 아트를 졸업하고 현재 미국 크랜브룩 미술대학원에서 도예과 학과장을 역임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현재 클레이아크 김해 미술관을 비롯해 이천 세계도자센터, 로스엔젤레스 카운티 뮤지엄, 서울 현대 미술관, 영국 빅토리아 앤 알버트 박물관, 맥신 앤 스튜어트 후란켈 화운데이션, 이태리 인터네셔널 세라믹 뮤지엄, 이태리 크랜불룩 아카데미 오브 아트 미술관, 일본 가나자와 아트 미술관, 오크랜드 뮤지엄 오브 아트, s-Hertogenbosch, 유러피안세라믹 아트 센터, s-Hertogenbosch 현대미술관, 아칸사스 아트 센터, Stoke-on-Trent, 시티뮤지엄 오브 아트, 브리티시 카운슬 콜렉션, 아보트 홀 박물관, H.R.H. 퀸 엘리자 베스 II 등에 소장돼있다.
1 「Stone Henge」
2 「Gate With Ball」
3 「San Diego Gate」
4 「Gate with Sticks」
5 「Two Pillars」
6「Round Gate」
7「Korea Gate」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
8 토니 햅번
필자 최석진은 이화여자 대학교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2003년 버지니아주의 버지니아 커먼웰스 대학에 초빙교수로 미국에 건너가 ‘한국전통 도자 표현기법’을 가르쳤다. 그간 아홉 번의 개인전과 100여회가 넘는 그룹전을 가졌으며 버지니아, 텍사스, 워싱턴 그리고 미시간 등 여러 곳에서 “한국 전통도예” 작업시범과 강의를 해왔다. 현재는 미국 현대도예 연구를 위해 미시간주의 크랜브룩 아카데미 오브 아트에 재학 중이다.
< 더 많은 사진은 월간도예를 참조바랍니다.>
World Ceramic Art - Artist
도예가 마틴 스미스
Martin Smith
글+사진 이태림 _ 도예가
마틴 스미스는 필자가 공부하고 있는 영국 Royal College of Art의 도예, 유리전공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05년 그는 나의 담당 교수였는데 1년간 그에게 혼쭐나게 질문을 받은 생각을 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개인적으로 선생의 작업을 제자가 논하는 것은 매우 부담스럽다. 하지만 그는 여태껏 내가 보아온 작가들과 확연히 구분 되는 것이 몇 가지 있다. 그것은 차가울 정도로 ‘논리적’이라는 것과,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원래 지질학과 물리학 등을 공부하던 학생이었으나 우연한 기회에 도예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1974년 브리스톨에서 도예전공으로 학부를 마치고 1977년에 Royal College of Art에서 대학원을 마쳤다.
그의 작품 발전과정을 연대순으로 정리하자면, 약 1970년대 말까지 그는 전통기술인 라쿠소성에 매료된다. 단지 전통적인 라쿠의 미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만은 아니다. 빠른 소성으로 인해 약 2시간이면 작업 결과를 볼 수 있는 신속성과 컨트롤이 불가능 하게 여겨지는 요변현상에 매료된 것이다. 특히 1978년도에 제작된 작업을 보면, 유약을 사용하는 방법은 전통적인 라쿠에서는 볼 수 없는 완벽한 조작을 통해 흑백대비와 디테일을 만들어냈다.(사진1) 매우 성공적인 라쿠 기법을 확립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라쿠를 하면 할수록, 알면 알수록 소성에 대한 흥미를 더 잃어가고 더불어 사람들이 잘 만들어진 라쿠작업을 만드는 작가로만 불려지는 것에 상당한 반감을 가지게 된다. 이것을 계기로 그는 ‘건축’이라는 새로운 요소를 작업에 불러들인다. 기의 형태에서 조형적인 작업으로 바꾸어 간다.(사진2)
런던으로 작업장을 옮기면서 도시에서 라쿠를 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인식함과 동시에 도예라는 정체성 확립을 더욱 강하게 하기 위해, 기器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조형작업으로 작업을 변화시키며 표면에 건축적 요소를 집어 넣는다. 그는 건축물의 타일과 벽의 조화를 작업의 표면에 넣었으며 소지는 벽돌흙을 사용하여 건축적 영향을 더욱 강하게 보여준다.(사진3)
그는 더욱 더 흙을 컨트롤 하고 싶었다. 보다 매끈하고 판판한 표면을 만들기 위해 유리 공예를 하는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는 cold work(소성 후 갈아내기)기법을 이용하여 더욱 완벽함을 만들어낸다. 더불어 검은 석판slate을 재단하고 갈아낸 후 소성된 기물과 접착시켜 석재와 구운흙과의 조화를 만들어낸다.(사진4) 이후 약 1992년까지 해체하고 조합하는 과정, 혹은 단순한 볼륨을 만들어내는 과정 등을 통해 다양한 시도를 한다.(사진5,6,7)
그는 작업이 점점 장식적으로 변화되는 것을 만족스럽게 생각하지 못하고 다시 한 번 도전을 한다. 휴가 기간을 통해 미국의 텍사스에 들러 미니멀리스트 작가 도날드 주드Donald Judd의 작업에 영향을 받고 작업을 더욱 단순화 시켜간다. 재료적으로는 금이나 백금의 상회유약 등을 사용하여 벽돌색의 표면과 그 위에 덮인 금색 또는 백금색의 대비를 만들어냈다.(사진8,9) 특히 2001년 TATE St.Ives에서 그는 극도로 절제된 동일한 형태의 반복을 이용한 설치 미술을 만들어 냈는데 현대 미술을 주로 전시하는 TATE에서 공예에 기반을 둔 그의 작업을 전시한 것은 그의 작업이 얼마나 영향력 있는가를 대변한다고 생각된다.(사진10,11)
이후 그는 자신이 만든 작업과 전시대와의 연관성, 구운흙과 다른 재료와의 연관성 등 작업과 환경과의 연관성에 관심을 많이 가진다.(사진12) 2005년에는 Barrett Marsden Gallery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색이 있는 유리와 흙 작업을 결합시켜 은색 상회유약 표면에 색유리 가 반사되는 시각 언어를 만들어 냈다.(사진13)
최근의 새로운 시도는 오랜 기간 등한시 해오던 물레를 다시 사용해 새 언어를 만드는 것이다. 이전의 작업들은 작품을 잘라내고 갈아내는 아주 시끄럽고 복잡한 공정을 통해 이루어졌지만 최근의 작업은 아주 조용한 환경 속에서 단순한 공정으로 빠른 결과물을 얻어내는 장점이 있다고 말한다. 더불어 얻어지는 보너스는 흙과 보다 친밀히 의사소통을 하게 되는 과정이 새로운 작업의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예상한다고 한다. 물레로 만들어진 그의 최근 작품은 <COLLECT2006>에서 특별상을 받고 빅토리아 앤 알버트Victoria &Albert 박물관에 소장되었다.
그의 작업 전개 과정을 보며 필자가 배우는 것은 작업의 아이디어를 뜬구름 없이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 놓은 것에 어떠한 가능성이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그에 합당한 조사를 하고 발전을 시키는 ‘합리성’이다. 따라서 그의 작업은 매우 연계성 있게 전개 되었다. 시각적으로 그의 작업은 매우 개념적인 미술로 보인다. 하지만 작업의 내면과 작업 과정은 ‘만듦’이라는 과정을 중요시하는 공예가로써의 단단한 바탕을 가지고 있다.
많은 작가들이 교수라는 직업을 겸한다. 교수라는 직업과 예술가라는 직업을 마틴 스미스처럼 잘 조화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그는 방학기간에는 흙으로 다양한 실험과 시도를 하고 학기 중 주말에는 방학 동안 디자인 해놓은 것을 작업으로 표현해내는 일을 한다. 인생과 작업 모두를 균형 있게 컨트롤 하고 있는 것이다. 공사가 다망함에도 불구하고 두 가지 모두를 훌륭히 해내는 것은 그의 예술적 열정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마틴 스미스는 1978년부터 2005년까지 영국의 Barrett Marsden, 미국의 Garth Clerk, 네덜란드의 Gallery de Witte Voet 등에서 18회의 개인전과 26회의 해외 단체전을 가져왔다. 현재 그의 작품은 영국의 빅토리아 앤 알버트 미술관과 일본의 동경현대미술박물관, 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등 24개의 국제 박물관에서 그의 작품을 소장 중이다.
필자 이태림은 현재 영국 Royal College of Art에 재학 중이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기사를 사용하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s://www.cerazine.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