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의 구도자求道者, 익요益窯의 한익환韓益煥 선생
최건_조선관요박물관 관장, 도자사
일생을 바쳐 조선백자의 색을 복원해온 소정 한익환 선생이 지난해 9월 향년 85세로 별세했다.
고인의 백자는 조선백자와 형태가 같은 것은 물론 빛깔도 뒤지지 않아
“옅은 청색을 뚫고 나오는 설백색이 깊고 청아하다”라는 찬사를 받아왔다.
조선백자의 결백한 색을 이해하고 복원을 위한 탐색과정에 들어선 유일한 한 사람,
소정 한익환의 백자를 되돌아보자.
우리 백자를 말할 때 자부심으로 가슴이 든든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물론 청자와 분청이 세계도자의 역사에서 예외적이며 특수한 존재로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고 한국식 회유도灰釉陶나 경도硬陶같이 독특한 질감과 개성 강한 조형의 도자가 공존하지만, 백자를 말할 때에는 정말 가슴이 든든해진다. 아마 그것은 우리 백자에 세계사적 보편성과 함께 한국적 특수성이 공존하면서, 앞으로 세계도자의 전개에 한국적 특수성이 일정 부분 기여하면서 획기적인 변화의 축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에 더욱 그렇다.
21세기 도자는 산업사회의 경우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자연과 인간의 본성을 발견하고 도덕성을 회복하는 인류의 바램이 시대정신으로 등장하게 될 전망이다. 도자에 있어서도 재료가 갖는 자연 그대로의 성질을 유지하면서 표면적 장식보다 내면적 아름다움을 추구한 조선백자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우리 백자에는 도자기가 갖는 본질적 아름다움이 그대로 남아있다. 중국의 백자가 다양한 채색으로 백자의 한계를 넘어 섰을 때에도, 또 일본·유럽의 백자가 산업사회를 거치면서 장식적이며 호화스런 상품도자로 변모했을 때에도 조선의 백자는 자연재료의 순수함을 고전적으로 표현하려는 경향으로 나타나 처음의 조형감각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이라는 시간과 공간에서 조선백자의 결백潔白한 색을 이해하고 복원을 위한 탐색과정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으로 한익환 선생을 꼽은 것에 아무도 주저하지 않는다. 그는 백자에 다가가기 위한 길은 단연코 조선시대 백자의 복원이라고 보고 팔십 여 년의 삶을 조선의 백색을 찾는 것으로 보냈다.
그와 도자기의 만남은 광복과 정부수립 이후 문교부 도자기기술원과 상공부 고등기술원의 요업과를 거쳐 중앙시험소 요업과에 몸담으며 시작하였다. 이것이 도자기와의 첫 번째 만남이었다. 두 번째 만남은 조금 시차를 두고 이루어졌다. 바로 조선백자와 국립중앙박물관과의 만남이었다.
요업과에서 익히 과학적 사고체계를 바탕으로 조선백자를 바라보는 그의 입장은 다른 이들과 조금 달랐다. 그의 관심은 재료의 본질을 파악하고 과학적으로 재구성해 내려는 노력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조선백자의 이상이었던 설백색雪白色을 마음에 굳힌 후 그의 실험대에 오르지 않은 백토가 없고 수백 수천 번의 실험을 거치지 않은 재료가 없다고 할 정도로 작업에 파묻혔다.
그가 오로지 백색에 모든 감각을 집중시키는 데에는 그 나름의 입장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조선백자가 갖는 소박하고 간결한 형태에서 백색이 백색다워지며 물질세계와 정신세계의 조화에서 끌어낸 백색이 백색답다는 판단이 섰을 것이다. 원료를 정제하여 고품위의 재질과 고화도 환원염 번조로 완전한 경질백자의 수준으로 올려 기술적으로 인공의 한계에 도달했으며, 기종器種은 단순 간결하고 장식적 요소를 가능한 생략하여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준수한 형태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 특히 그는 순백색 바탕을 존중하되 꼭 필요한 경우 청결을 상징하는 푸른색 안료로 함축된 정신세계를 절제節制의 과정을 통하여 표현하는 정도를 항상 유지하여 표면적인 화려한 색채보다 내면의 진중한 색을 이끌어 내려 하였다.
선생의 백자는 원료를 향한 지극한 애경심愛敬心의 결과이며 다른 한편으로 조선백자가 추구했던 자연그대로의 순수함을 고전적 표현하는 방법을 재현했다는 데에 깊은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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