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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장독대의 기억 고스란히 피어나는 옹기점 ‘옹기마을’
  • 편집부
  • 등록 2007-02-08 14: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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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장독대의 기억 고스란히 피어나는 옹기점 ‘옹기마을’

옹기 흙으로 지은 벽과 바닥,
앞마당에 놓인 오래된 커다란 옹기,
약간의 보수만으로 사용이 가능한
20m는 족히 넘는 길이의 200년 된 옹기가마 뿐만 아니라
옹기를 빚고, 굽는 방법도 전통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우리 옹기는 부엌 가까운 뒤뜰에 햇볕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 아니면 앞 뜰 우물가 가까운 양지바른 곳에 돌로 쌓은 높직한 단, 즉 장독대 위에 놓였다. 장독대. 지금은 흔치 않은 풍경이지만 요즘같이 김장철이 지나고 겨울눈이 쌓일 때쯤이면 옛 장독대의 기억이 떠오른다. 장독대에 올라선 항아리 숫자는 그 집의 살림살이 규모를 가늠케 했고, 장독대의 정돈 여부로 여인네의 살림 수준을 판단했다. 이젠 잊혀져가는 장독대. 우연이라도 어느 집 한구석에 놓인 옹기그릇을 발견하게 되면 반가운 마음보다 아련한 기억 한편의 그림이 씁쓸히 교차한다.
철썩! 철썩! 탁! 탁! 탁! 옹기점에서 듣는 수레질 소리는 언제나 힘이 넘친다. 지금도 2시간에 한 대씩 버스가 다니는 김제시 백산면 부거리 ‘옹기마을’에서는 옹기장이 안시성(41)씨의 쳇바퀴 타렴 수레질이 옹기그릇을 꿋꿋이 빚어내고 있다.
 
200년 된 전통옹기가마 옆에 둥지튼 옹기점
‘옹기마을’이 자리한 이곳 백산면 부거리는 200여 년 전부터 있던 옹기가마 6개가 자리했던 곳이다. 현재는 당시의 가마 1기와 100여 년 된 옹기작업장 한 곳만 남아있다. 안시성씨는 원광대 도예과 재학시절, 한 워크숍 행사에서 본 옹기제작기법과 크기에 반해 옹기에 빠져들었다. 지난 1992년 백산면 부거리에 옹기를 배우기 위해 처음 찾아왔을 당시만 해도 마을 전체가 과거 선조 옹기장들의 손때가 그대로 묻어난 곳이었다. 옹기를 처음 배우기에 매우 좋은 환경이었기 때문에 옹기에 더욱 심취할 수 있었다. 옹기일을 배운지 3년이 되던 해에 경영에 어려움을 느낀 주인이 옹기점을 처분하겠다고 내놓자 선뜻 인수하겠다고 나섰다. 이곳 옹기 마을에 사는 동네 어른 대부분이 옹기장이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마을에 마지막 남은 옹기점마저 사라진다는 사실이 안타까워서였다. 새로 둥지를 틀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오래된 커다란 가마 옆에 자신이 사용하기 적당한 크기의 5칸짜리 전통옹기가마를 새로 짓는 것이었다. 새 가마를 지은것 외에 작업공간은 전혀 손대지 않고 곳곳에 스민 옛 옹기점의 흔적을 고스란히 남겨두었다. 옹기 흙으로 지은 벽과 바닥, 앞마당에 놓인 오래된 커다란 옹기, 약간의 보수만으로 사용이 가능한 20m는 족히 넘는 길이의 200년 된 옹기가마 뿐만 아니라 옹기를 빚고, 굽는 방법도 전통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질좋은 태토와 천연유약 선택에 신중
옹기마을에서 만들어지는 그릇에 쓰이는 옹기토는 인근 황산면에서 원토를 직접 채취, 수비해 사용한다. 그의 작업장 한켠에는 채취해둔 옹기토가 가득하다. 이전에 비해 옹기흙의 불심이 떨어져 불속에서 버티지 못하는 일이 많아 좋은 흙을 찾게 됐을 때 많이 확보해 놓은 것이다. 특히 약토는 지역마다 편차가 심해 더 신중하게 채취한다. 유약용 잿물은 마을 인근에서 얻은 재와 앞산의 약토를 4 : 6비율로 혼합한다. 약토 비율이 많은 것은 광을 없애기 위해서다. 광명단(산화연)의 폐해를 아는 구매자들이 천연유약을 쓴 전통방식의 광 없는 옹기그릇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곳의 옹기는 만들어지는 도구와 방식은 전통적이지만 현대인들의 주거와 생활에 어울리는 형태의 그릇과 생활소품들이다. 생활소품 옹기들은 서울 인사동의 <점>과 서울 쌍문동의 <옹기민속박물관>, 수원의 <팔달문 문화>, 전주의 <연다원>과 <공예품전시관>, 고창의 <선운사> 등에서 판매되고 있다. 옹기그릇의 주 구매층은 30~40대 주부들이다.
옹기마을의 운영자 안시성씨는 “옹기는 제작하는 방법에 있어 다른 도자작업에 비해 고된 일이 많습니다. 옹기가 갖는 덩어리감 만큼 옹기일 자체의 덩어리감도 큽니다. 소품류가 많이 판매된다고 해서 소품류 위주로 만들고 있지는 않습니다. 가마 안에서도 큰 그릇과 작은 그릇의 제자리와 역할이 있습니다”라고 한다.
옹기작업은 흔히들 나이 들어서까지 지속하기 힘든 작업이라고 한다. 안시성씨도 “45세가 되기 전에 큰 옹기들을 많이 만들어보고 싶다”고 하니 말이다. 그는 최근 옹기수집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옹기를 모아 지역 문화공간으로 잘 알려 옛 옹기마을을 다시금 재현하고 싶은 욕심이다. “그때쯤이면 옹기장이가 문화재 명장으로도 인정받고, 세계적으로도 유일한 전라도 옹기기법인 쳇바퀴 타렴이 세계문화유산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라며 꿈꿔 본다. 
김태완 기자 anthos@paran.com

왼쪽 오래된 소반 위에 놓인 생활옹기그릇
오른쪽 수화문옹기와 소줏고리
왼쪽 옹기 찻주전자
오른쪽 옹기장군과 접시

전라북도 김제시 부거리 912번지
tel : 063-542-0049
e-mail : onggimaeu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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