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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술품 감상/안덕환의 첫 번째 골동 이야기
  • 편집부
  • 등록 2007-04-02 18: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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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술품 감상
안덕환의 첫 번째 골동 이야기

골동은 그냥 보면 단순하다. 그냥 오래된 자기나 조각일 뿐이다. 온전한 작품도 별로 없고 군데군데 떨어져 나간 경우도 많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에게는 단순한 골동일 뿐이며 버스를 타고 지나가면서 산을 보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어떻게 차창 밖으로 산을 보면서 그 산속에 숨어 있는 온갖 바위와 나무와 물의 향기, 계곡에 있는 사찰의 향기를 냄새 맡을 수 있을 것인가. 역사와 세월의 새김, 정상에 말라 죽어있는 오래된 고목의 형상, 버려진 폐가의 자취, 누가 쌓았는지 모를 허물어진 돌탑의 모양새, 골동은 그런 것과 같다. 무심코 지나치면 아무것도 안보이지만 들여다볼수록 바라볼수록 그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형상이 나타난다. 보는 즉시 나타나는 경우도 있고, 심한 경우 도무지 해독이 안 되다가 수십 년이 지난 어느 날 밤에 갑자기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순간이 되면 갑자기 가슴이 헉 막힐 정도로 감탄이 온다. 이러한 골동의 미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조선 초기 술병이다. 이 술병을 보는 순간 긴장되었던 모든 것들이 그냥 일시에 푹 주저앉고 만다. 화려한 백자나 청자에서는 깔이 어쩌구 저쩌구 투명도가, 산화끼가, 흑백 상감이, 음각이, 갑반이다, 관요다, 민요다, 궁에서 쓰던 거다, 양반 거다, 병이 휘었다, 깨졌다, 섭치다, 투자 가치가 있고 없고, 참고품이니, 박물관용이니 등등...따져가며 보게 되는 것이 상례이다. 그런데 이 병의 경우 보다시피 따지고 자시고 할 건덕지 없는 것 아닌가? 먼저 주둥이 쪽은 깨어져 나갔고 병으로써의 균형감마저도 없다. 그 뿐이랴, 색깔은 가장 인기 없는 쥐색에 가까우며 도안이라야 애들이 담 벽에 낙서한 것 마냥 또는 유치원 정도 아이가 공책에 그림을 그린다고 해본 정도이니 이런 병을 약간의 목돈 들여 산다? 아니지...이러한 것이 골동 수장을 좀 한다고 하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변이다.

지금 나는 이 술병을 소장하고 있다. 아무래도 나는 일반적이지 못한 듯 싶다. 그래서 나는 외부의 변보다는 이 안에 숨겨져 있는 꾸밈없이 해 맑은 한 도공의 생각들을 되새겨 본다. 모양새는 우직스럽고 덤덤하며 한편으로는 약간의 수줍음마저 띄고 있다. 어깨로부터 따름곳까지의 목은 일부러 잘난 체 않으려고 했음인지 못났다 하리만큼 굵고 투박스레 하였고 반면 어깨로부터 밑굽까지의 만듦새는 아주 유연하고 부드러워 수줍은 모습을 느끼게 한다. 밑굽은 의외로 병 전체의 비례감에 걸맞지도 않게 왜소하게 처리한 바 이 또한 묘한 수줍음을 느끼게 하는 술병이다.

도안을 본다면 암붕어가 알을 슬러 수초가로 가는데 숫붕어가 뒤따르는 모습이다. 얼핏 보기엔 자라 모습 같기도 하나 잘 보면 붕어가 틀림없다. 발 여섯 개짜리 자라가 없고 또한 타원형 자라가 없다. 따라서 그것이 붕어의 등지느러미임을 알 수 있다. 몸통 뒷부분에 마치 몽땅 잘린 쥐꼬리 같은 것도 역시 꼬리지느러미이며 주둥이의 표현도 살짝 뾰죽하게 처리한 솜씨, 그 익살끼가 너무 재미있다. 관요나 민요에서 모든 도자기의 도안 구성은 태반이 그 제품이 돋보이도록 의도적으로 장식성을 강하게 구사한다. 하지만 이 병에서의 도안은 어떠한 의도적인 것이나 장식을 위한 흔적은 하나도 찾아 볼 수가 없다. 병의 생김새나 도안마저 그러하니 보는 순간 이를 이해하는 편에서는 편안한 느낌을 갖게 될 수 밖에 없다.
다음 도안을 세세히 관찰해 보자. 이 병의 붕어 두 마리만을 한 컷으로 보면 이는 걷는 것도 헤엄치는 것도 서 있는 것도 아니다. 헌데 이 병을 반 뼘 정도 오른편으로 살짝 돌려놓고 왼편의 수초 한 포기와 오른편의 암붕어를 한 컷으로 하고 보면 암붕어가 수초가를 향해 가고 있는 모습임을 알 수 있다. 머리 쪽을 살짝 낮추어 표현하여 붕어가 앞으로 헤엄쳐 가는 모습이 나타난다. 그리고 여느 붕어들의 표현은 머리부에 아가미를 치고 눈 표시로 점 하나를 꼭 찍어 붕어의 얼굴을 만들어 놓아 그 표정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런데 이 병의 붕어는 얼굴이 없으니 그 표정 또한 있을 수 없다고 생각되나 실은 그 표정이 엿보인다. 몸통 자체에 수많은 표정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실제 붕어의 상을 추상이란 세계로 도입한 것이다.
병 전체에 하얀 백토로 살짝 붓질을 돌리니 침침한 병 전체의 깔을 약간 밝게 하는 효과와 함께 물가를 상징한 것으로 한 쌍의 붕어가 알을 슬러 수초가로 가는 때는 어느 해 화사한 봄 날씨였나보다. 이 도공은 바로 이 병의 그림같이 추상적인 곳으로, 또한 동심의 세계로 되돌아가고 싶었던 것 같다. 

한쌍 붕어병31×16㎝.조선초기

고미술 연구 평론가 안덕환은 경희대 법대를 졸업했으며, 현재 (주)샘에너지 고문으로 고미애회古美愛會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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