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기전氣器展
보다 풍요로운 생활을 위한 디자이너의 제안
글 이와이 미에코岩井美惠子_기후현 현대도자미술관 학예원
번역 진혜주_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 도예전공
새로운 도자기디자인의 가능성이 드러났다. 일본 세토瀨戶시 신세기공예관에 발걸음을 들여 놓으면 아름답게 쌓아 올린 여러 종류의 하얀 그릇들 저편에 희미하게 푸른빛을 내뿜는 조명기구가 벽에 걸려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별실의 전시케이스 안에는 자기질의 주기와 포트가 정연하게 늘어서 있어서 우리는 보다 짙은 긴장감을 느낄 수 있다. 위층에는 백자화기와 함께 조금 전 보았던 작품과 같은 시리즈의 조명기구가 여럿 전시되어 있고, 한 조명기구에서는 치료음악healing music이 흐르고 있었다. 전시장 내의 약간 어두운 분위기와 함께 그곳에는 번화가의 혼잡함에서 벗어난 조용한 공간이 존재했다.
이 전람회는 세토시가 시리즈로 진행시키고 있는 기획의 하나로써 세토시로부터 출품을 의뢰받은 작가가 또 한명의 다른 작가를 선정하는 형식의 2인전이다. 이번 <기기>전에서는 세토시가 지목한 최재훈과 그가 지명한 이도 마사노부井戶眞伸 등 두 사람의 프로덕트 디자이너들에 의한 작품이 전시되었다. 전시회 제목인 <기기>란 디자인에 대한 그들의 자세에서 비롯되어 붙여진 조합어인데, 이도 마사노부의 말에 의하면 “이 정도면 어떻겠냐며 큰 소리치는 디자인이 좋은 디자인이 아니라 ‘기운’이 느껴지는 디자인, 그러한 것을 디자인하고 싶다.” 라는 뜻으로 명명되었다고 한다.
둘에게는 공통점이 많다. 모두 미술대학진학을 희망했고 산업디자인을 전공하기 위해 아이치현립예술대학(이하 아이치예대)에 입학, 재학 중에 도자전공 교수이며 일본 도자기 디자인의 시조격인 모리 마사히로森正洋에게서 교육을 받았다. 더욱이 최재훈은 제6회, 이도 마사노부는 제7회의 국제도자기전 미노美濃의 테이블웨어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그들은 모두 아이치예대 디자인학과 출신이며, 도자전공자는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아이치예대 디자인전공의 출신자로 현재 도자기 디자인의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자는 이 둘 뿐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전시장에 진열된 두 사람의 작품 성향에는 차이가 있다. 최재훈은 국제도자기전 미노에서 대상을 수상한 「The Light」라고 하는 조명기구 시리즈의 최근 작품을 발표했고, 이도 마사노부는 대학 졸업 후 제작한 것부터 최근까지의 그릇류를 출품하여 지금까지의 길을 되돌아 보는 내용으로 구성하였다.
최재훈의 「The Light」 시리즈는 그의 직장에서 개발한 건축자재를 사용한 조명기구인데, 이 건축자재에는 습도조절기능은 물론 유해물질을 흡착시키는 효과까지 있다. 「The Light」는 안쪽을 잘라내어 창을 만든 판상의 건축자재를 여러 장 겹쳐 붙여 판과 판 사이에 깊숙한 공간이 있는 입방체의 모양이다. 그리고 창의 일부분에 LED를 설치하여 환상적인 조명기구가 되게 하였다. 이 작품은 LED의 위치에 따라 빛의 각도와 밝기에 변화가 나타나며 희미한 푸른빛은 날카로운 그림자를 만들어 부드러운 소재에 긴장감을 더하기도 한다. 특히 최근작은 내부에 각선모양이 새겨져 있어서 최재훈의 작업에 대한 유희가 반영됨과 동시에 한층 더 강한 존재감을 느낄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대상 수상 후의 시리즈로 제작한 다양한 버전을 발표함으로써 단순히 조명기구에 머무르지 않고 최재훈이라는 작가가 창조한 「The Light」라는 새로운 양식이 제시되었다고 할 수 있다.
최재훈은 삼형제 중 둘째로 1965년 경상북도 군위에서 태어났다. 가족과 함께 오사카로 건너가서 지낸 소년시절에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던 형의 영향으로 그림과 만화를 잘 그렸다고 한다. 그리고 한국 계명대학교 미술대학 산업미술과 졸업 후, 1990년 일본으로 돌아가 아이치예대 대학원 미술연구과 미술전공(디자인)을 수료했다. 이후 일본 유수의 도자기회사 INAX에서 기업 디자이너로서 신상품개발에 관련된 일을 하면서 자신의 작품을 활발하게 제작하고 있다. 최재훈은 “INAX의 이해와 협력이 없었다면 작품을 지속적으로 제작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한다.
한편, 백白을 기조로 한 이도 마사노부의 작품은 자기의 독특한 소재감이 반영된 샤프하고 모던한 그릇들이다. 본 전시에서는 신세기공예관 전체에 걸쳐 각기 다른 양식의 작품들을 배치하여 각각의 특징을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하였다. 안내 데스크 왼쪽 방의 주기와 제3회 세계도자기비엔날레 생활부문에서 금상을 수상한 티셋트 「sole」 등 자그마하면서도 긴장감 있는 작품들은 아래쪽으로부터 조명을 받아 자연광에서 접하는 백자 이상으로 그 하얀색에 깊이가 더해져 보였다. 그 옆 전시실에는 국제도자기전 미노에서 대상을 수상 「hanahana」와 금상 수상작인 「vague」 등 접시류를 중심으로 한 식기를 전시해 마치 신혼집 식탁과 같은 눈부심과 청결함이 감돌았다. 2층에서는 화기와 「hanahana」 새로운 전개를 볼 수 있었다. 원래 「hanahana」는 사엽四葉과 삼엽三葉의 두 종류의 형태를 각각 대·중·소 세 가지 크기로 제작 한 것이었는데, 시장의 요구에 맞추어 사엽형태의 접시에 작은 크기의 「hanahana」를 새로이 제작한 것이다. 이 새로운 크기의 것은 백자만이 아니라 색을 가미한 것도 검토되어져 현재 시험 중이라고 한다.
이 「hanahana」를 비롯한 이도 마사노부 작품의 특징은 그 제작 과정에 있다. 컴퓨터상에서 디자인하고 컴퓨터를 이용해 수지樹脂원형을 제작한다. 그 디자인을 컴퓨터로 공장에 보내면 작품이 완성되는 구조이다. 흙에 손을 묻히지 않고 디자인하는 이 방법은 8년 쯤 전부터 도입한 기법이라고 한다.
이도 마사노부는 1971년 첼리스트인 아버지와 피아니스트인 어머니 사이에서 셋째로 도쿄 인근의 마치다町田시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만들기를 좋아했던 이도 마사노부는 일본 굴지의 진학명문교에 입학하였지만 학업보다는 제작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고 예술대학을 선택했다. 아이치예대에서는 디자인·공예과의 디자인전공을 택해 디자인의 기본을 공부하면서 도자기디자인을 접하여 모리 마사히로를 비롯한 도자전공 교수진에게도 지도를 받았다. 이도 마사노부가 졸업 작품으로 제작한 자기주전자와 접시는 대학의 매입收買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그 후 이 졸업 작품은 다수의 그룹전에 출품됨으로써 현재 이도 마사노부의 활약을 예견해 준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졸업 후 이도 마사노부는 각지의 공업기술센터와 민간디자인회사에서 경험을 쌓았고 현재 아이치교육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
최재훈과 이도 마사노부의 경연은 도자기 디자인의 가능성을 넓혔다. 그들은 ‘도자기’라는 것을 중시할 뿐 아니라 ‘디자인’의 면도 결코 놓치지 않았다. 이 점은 도자전문 저널리스트인 이노우에 타쿠오井上隆生가 이 전시회를 “도예가의 작품을 ‘회화’라고 한다면 두 디자이너의 작품은 보다 생활에 녹아든 ‘포스터’다” 라고 평한 문구에 집약되어 있다. 근대의 도자기는 다른 요인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그 자립성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되어 현재까지도 그 교리에 얽매여 있는 도자기 디자이너들이 많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그들은 사회의 요구에 맞추어 나가며 그곳에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표현하는 요컨대 ‘보다 풍요로운 생활을 위한 디자이너의 제안’이라고 하는 디자인의 원리를 도자기디자인의 세계에 들여온 것이다. 도자기디자인계의 혁신자인 두 명의 미래에 주목하는 것과 동시에 널리 사랑받는 도자기 디자인의 세력이 확장되는 날을 기대해 본다.
1,2 이도 마사노부 작 3, 4 최재훈 작
<더 많은 사진보기 ==> 월간도예 2007년 4월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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