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성도EUM.SUNG.DO
태곳적 풍경 속에 서다, 우주적 자궁과 대면하다
글 고충환 미술평론가
도예는 크게 도기와 도조로 나뉜다. 도기는 용기로써의 그릇에 무게중심이 실린 개념이며, 도조는 흙을 재료로 한 입체조형을 통해 그 개념을 풀어낸다. 도기가 도예를 기능면에서 이해하고 있다면, 도조는 이를 재료적인 측면에서 이해하고 접근한다. 이와 함께 도조는 조형성과 형식성(혹은 형상성)에 경사돼 있어서 그 정체성이 사실상 조형예술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도기는 그릇으로 나타난 기능면에 한정돼 있는 탓에 그 운신의 폭이 넓지 않지만 생활 속의 예술 곧 생활미술을 실현한다는 점에서 넓은 의미에서의 조형예술과 맞물린다. 이에 반해 도조는 그 자체가 아예 조형예술의 적극적인 한 형식이며, 이는 소위 현대도예에서 쉽게 확인되는 현상이기도 하다. 물론 도기와 도조의 경계를 허물고 상호내포적인 형상성을 실현한 예도 이제 더 이상 낯설지만은 않다.
엄성도는 이번 전시3.14-3.20. 동덕아트갤러리에서 캐스팅이라는 특유의 방법에 의해 제작된 일련의 도조작품들을 보여주고 있다. 캐스팅은 말할 것도 없이 조각, 판화, 회화를 아우르는 조형예술의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문법으로 정착된 것이지만, 도예와 관련해서는 아직 생경한 것이 사실이다. 일반적인 조형예술에서의 캐스팅은 라이프스타일과 라이프사이즈를 통해 마치 현실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것 같은 즉물적인 표현을 가능하게 해준다. 이에 반해 도예에서의 캐스팅은 공법이나 재료가 갖는 한계 등 기술적인 제약조건이 상대적으로 크게 작용하는 편이며, 또한 그 프로세스에 대한 기술적인 습득의 과정없이는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이기도 하다. 엄성도의 이번 전시는 작가가 이런 제약조건을 극복했음을, 그리고 마침내 그 방법을 자기화하는데 성공했음을 확인시켜준다. 작가는 캐스팅을 도예와 도조의 표현영역을 확장시킬 수 있는 계기로 보고 있는 만큼 이는 차후의 작업에서 더 탄력을 받게 될 듯싶다.
엄성도는 이런 캐스팅 공법을 매개로 특유의 형상을 빚어낸다.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그 형상들은 비정형의 원형을 몸통으로 하여 그 표면에 마치 원형생물의 감각촉수와도 같은 무수한 돌기들이 나 있다. 이런 하얀 돌기들과 함께 몸통의 표면에는 청색과 분홍색조의 얼룩 반점들이 나 있어서 한눈에도 살아있는 유기체를 연상시킨다. 이는 마치 원형생물들이 시간이 정지된 듯 정적인 암흑 속을 유영하는 태곳적 풍경과 대면케 한다. 말하자면 그 자체 중성적이고 가치중립적인 전시공간에다 특정의 성격을 부여하여 이를 일종의 상황적 공간 혹은 서사적 공간으로 변형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공간적 점유야말로 조형예술의 중요한 문법 중 하나이며, 작가는 이를 통해 생명을 잉태하고 있는 우주적 자궁 속으로 관객을 인도한다. 보기에 따라서 돌기 형상은 몸통 내부로부터의 에너지의 분출이나 기의 방출을 상기시키며, 이 역시 작가의 작업을 관통하는 주제의식인 생명 혹은 생명력의 표출과 통한다.
이로써 작가는 캐스팅으로 나타난 특유의 공법을 통해서, 그리고 조형물의 공간적 점유(공간을 조형요소로 끌어들이는 행위)를 통해서 도예의 장을, 그 표현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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