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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투각 모란무늬 필통
  • 편집부
  • 등록 2021-12-29 14:15:48
  • 수정 2024-07-04 16:4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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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돋보기⑨]

 

백자투각 모란무늬 필통
白磁透刻牧丹文筆筒

 

글_김대환 상명대 석좌교수, 문화재 평론가

 

사진1 「백자투각 모란무늬 필통白磁透刻牧丹文筆筒」 조선시대 15세기~16세기. 높이 17cm. 입지름 10cm. 굽지름 10.2cm

 

사진1은 조선 초기에 제작된 투각필통(透刻筆筒)이다. 조선 후기에 여러 모양으로 제작된 관요 백자투각 필통의 원형이라고 볼 수 있으며 조선 초기에 제작된 유일한 작품이다.
붓을 보관하는 필통은 문방사우(文房四友)에 포함되지는 않지만 사랑방 선비의 필수 문방 도구로 사용되었으며 붓의 크기와 종류에 따라서 재질도 다양하여 도자기, 나무, 돌, 금속 등으로 만들었다. 그중에서 나무는 가공하기가 용이하고 가볍고 잘 깨지지 않아서 조선시대 여러 계층에서 애용하였다. 그러나 도자기 필통은 나무필통에 비하여 제작하기도 까다롭고 잘 깨지는 성질 때문에 많이 제작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다만 조선 후기의 왕실 관요에서 특별히 제작된 여러 종류의 우수한 작품들이 전해지고 있고 조선 말기에는 민요에서도 관요제품을 모방하여 제작하기도 하였다.
  그동안 조선 초기에 제작된 도자기 필통의 존재 여부를 알 수 없어서 조선 후기에 제작된 분원관요의 백자필통은 중국의 필통을 모방하여 제작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조선 초기에 제작된 ‘백자투각 모란무늬 필통’(사진1)의 존재가 확인됨으로써 조선 후기에 제작된 백자필통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게 되었다. 투각기법의 필통은 중국에서는 거의 제작되지 않았고, 우리나라는 조선 초기부터 후기까지 꾸준히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백자투각 필통은 조선시대 사기장들의 독특한 창작품으로 볼 수 있다.
  조선 초기에 제작된 ‘白磁透刻牧丹文筆筒’(사진1)의 전체적인 생김새는 안정된 항아리 모양으로 배가 약간 볼록하여 복스러우며 입 주변은 살짝 벌어져 있고 필통의 안쪽 면에는 물레 흔적이 약간 남아 있다. 주 문양은 조선 초기에 유행하던 커다란 모란꽃과 꽃봉오리, 잎줄기를 대칭으로 배치하여 능숙하게 투각하였고 위아래의 종속 문양은 구름위의 여의주 문양과 사다리꼴 문양을 투각하였다. 몸통에는 맑고 투명한 유약을 시유하여 번조하였으며 빙렬이 있고 광택이 좋다. 안굽처럼 들어간 바닥 굽은 비교적 높은 편이며 가느다란 모래 받침을 사용하여 갈아낸 흔적이 남아 있다.(사진2)
  일본 오사카 동양도자미술관에 소장된 조선 초기 ‘백자투각 의자’와 문양과 기형이 거의 같다.(사진3) 당시에 유행하던 같은 종류의 그림 밑본을 사용하여 문양을 새긴 것으로 생각되며 소성온도의 차이는 있으나 동일한 시기와 지역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이 유물은 유물 자체의 희소성뿐만 아니라 투각기법의 뛰어난 조형성과 문양의 예술성을 고루 갖추었고 조선 초기의 필통과 조선 후기의 필통의 맥락을 연결하여 연구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작품으로 투각기법 필통에 내재 된 의미가 매우 크다.

-----이하 생략

 

<</span>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자세한 내용은 세라믹코리아 2021년 12월호를 참조바랍니다정기구독하시면 지난호보기에서 PDF를 다운로드 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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