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돋보기⑫]
백자 청화 기린무늬 향로
白磁靑畵麒麟文香爐
글_김대환 상명대 석좌교수, 문화재 평론가
사진1.「백자 청화 기린무늬 향로白磁靑畵麒麟文香爐」 조선시대. 높이25cm, 입지름 16cm.
경기도 광주 분원리는 19세기 조선왕실에서 필요한 도자기를 생산하던 도자기 공방인 사옹원(司饔院)의 분원(分院)이 설치된 곳으로 다양한 종류의 왕실용 도자기를 생산한 조선후기 최대의 관요(官窯)였다. 풍부한 물과 목재, 고령토의 근접성이 용이하고 도성인 한양으로의 편리한 운송수단 수로(水路)가 조선 왕실의 도자기를 생산하고 공급하는데 최적의 장소이기 때문이었다.
도자기 향로를 본격적으로 제작한 시기는 고려시대로 형태와 문양이 매우 다양하며 현존하는 유물도 여러 종류가 남아있다. 기린, 사자, 오리, 용, 어룡, 투각 칠보문, 연꽃봉오리 등의 상형청자 향로를 비롯하여 방형이나 원통형의 물가 풍경 무늬나 한나라 청동기를 인용한 도철무늬 향로, 향완형 향로 등으로 대부분 실내에서 사용하는 작은 크기이다. 당시 융성했던 불교문화와 차문화의 유행과 더불어 의식용구나 다도구로 주로 상류사회에서 애용되었다. 이런 전통은 유교문화로 변화된 조선시대도 이어져서 제례용 도구로 도자기 향로가 꾸준히 제작되었으나 고려시대에 비하면 획일화되고 단순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다만 조선 초기에 제작된 분청사기 향로의 경우에는 한나라 청동기의 향로를 인용한 복고적인 모습도 보인다.
조선시대 백자향로는 대부분이 순백자, 투각백자, 음양각백자로 표면에 청화안료로 문양을 넣지 않는다. 간혹 청화안료로 초화문을 시문하는 경우도 있으나 드문 사례이고 유교의 제례에 사용되기 때문에 현란한 청화안료의 문양을 자제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시대적 상황에서 (사진1)의 「백자청화 기린무늬 향로(白磁靑畵麒麟文香爐)」는 매우 파격적인 작품이다. 향로의 몸통에는 상서로운 동물인 기린(麒麟)을 구름위에서 비상하는 모습으로 생동감 있게 그려 넣었는데, 물론 왕실의 화원 화가 솜씨이며 세 다리와 목 부분까지 여의두문을 촘촘히 그렸다. 그리고 곧게 선 구연부는 번개문(雷文)을 둘렀으며 형식화시킨 작은 손잡이를 달았다. 향로의 다리부터 입구까지 온몸에 청화안료로 화려하게 치장을 하였다. (사진2)
태토는 정성껏 수비한 양질의 백토를 사용하여 성형하였고 맑고 투명한 담청의 유약을 골고루 입혔으며 세 다리 바닥에 유약을 닦아내고 모래 받침으로 번조하였다. (사진3)
세련되게 균형이 잘 잡힌 이 향로의 기형은 조선의 법궁인 경복궁 근정전 앞에 놓여 있는 청동향로의 모습과 비슷하다. 금속제 향로를 생각하며 도자기로 빚은 특별한 사례로 볼 수 있으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몸통에 그려진 ‘기린문양’이다. (사진4)
기린은 용의 머리로 한 개의 뿔이 달렸으며 사슴의 몸에 소의 꼬리를 달고 몸통은 오색의 털과 용의 비늘이 덮여있는 상상의 동물이다. 자애심과 덕망이 높은 생물이라 아무것도 먹지 않고 1000년을 살고 ‘인수’라고도 불리며 모든 동물 중에 으뜸으로 성인이 태어날 때 나타난다고 전한다. 고구려의 벽화무덤에 최초로 등장하는 ‘기린’은 신라시대 막새기와의 문양으로도 사용되었고 고려시대에는 왕의 호위군을 ‘기린군’이라 하였다.
조선시대는 민화의 주제로도 자주 활용되었고 특히, 대군이상의 왕족만이 기린문양의 흉배를 착용할 수 있었으며 머리에 한 쌍의 뿔이 달린 흥선대원군의 ‘기린흉배’가 전해지고 있다. 따라서 기린문양이 그려진 이 백자향로는 흥선대원군이 기거하던 운현궁에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사진5)
조선시대 생산된 백자 중에서 기린문양의 도자기가 몇 점이 전해지고 있을까? 아마도 이 「백자청화 기린무늬 향로」가 유일한 사례일 것이다. 중국 명청대의 도자기에는 자주 등장하는 기린문양이 우리나라 조선시대의 청화백자에는 왜 사용되지 않았는지 그동안 풀리지 않던 의문점이 이 유물의 등장과 함께 한순간에 해결되었다. 문화재 연구자는 발품을 파는 만큼 얻을 수 있다는 선학들의 충고가 진리임을 또다시 깨닫는 순간이다.
사진2. 향로의 입구부분
사진3. 향로의 다리부분
사진4. 향로 몸통의 기린무늬
*본 기사는 월간도예에 연재되는 칼럼으로, 도자문화 이론을 대중적으로 소개하고자 본지에 후속 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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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대환은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문화재 보존학을 전공했으며 40여 년간 국내외 발굴현장과 유적지를 답사하며 문화재를 연구했다. 지난 15년간 대학교 박물관과 국공립박물관에 신라금동불상, 고려청동탑, 고려청자, 고려도기, 조선백자, 고려와전, 벼루, 출토복식 등 5천여 점의 유물을 무상 기증했다. 주요 저서로는 『박물관에서 볼 수 없는 문화재1,2』가 있으며, 현재 상명대학교 석좌교수이자 문화재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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