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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재현 동아인재대학 교수
  • 편집부
  • 등록 2003-03-20 13:35:08
  • 수정 2016-04-17 01: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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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은 흙이었으면 좋겠다 글/사진 명재현 동아인재대학 예체능계열 교수 작업하면서......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흙이 그릇이 된다는 신기한 생각. 도자기를 하는 많은 이들이 처음 작업을 할 때 그러한 생각을 가끔씩은 하겠지만 유난히 빈번한 생각을 하는 나는 무엇이 부족한 탓일 것이다. 아직도 가마를 여는 퉁퉁 뛰는 가슴이 있음 또한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은 것들이 무척 많은 까닭일 것이다. 하지만 물레차고 산다는 일이 얼마나 유쾌한 일인가. 참 좋은 은사님을 만났다는 일도 기가막힌 행운이다. 그 분의 가르침이 없었던들 이 즐거움을 안고 살지 못했을 테니까 말이다. 지금도 그 분은 항상 내 작업의 중심에 계신다. 대학시절 내내 도자기실 쪽방에서 지내며 훌륭한 그릇하나 만들겠다고 찌그리고 펴고 부수고.... 그 의욕 하나로 흙에 맞섰던 일이 우습기도 하고 그립기도 하다. 마당이 큰 집에서 비 맞고 서 있어야 어울릴 법한 무지 큰 항아리도 만들어 보고, 가마 폭을 먼저 재고 그것만한 접시를 만들었는데 재임이 어려워져 끙끙대던 일, 또 알 수 없는 이상한 형태의 조형물도 만들었던 그러한 실패(?)들이, 내가 흙을 만지는 일에 도움이 되었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도 작업이 어려운건 그때나 지금이나 한가지다. 이제 대학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작업장과 문화센터에서 도자기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을 가르치는 일도 하지만 어디 가르친다는 것도 말 같이 쉬운 일인가. 나도 어려운데 말이다. 단지 내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해오던 시행착오들을 알려주고 어이없는 큰 실수를 줄여줄 뿐이 아니겠는가. 살다 보니 몇 가지 생각이 있다. 무엇이건 그것은 그것다워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이다. 그리고 그것이 제자리에서 그것다운 역할을 한다는 일 또한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생각한다. 사람이건 흙이건 말이다. 물레차서 그릇을 만든다. 내 발에서 나오는 동력으로, 내 손에 의해 흙덩이는 움푹하게 만들어지고, 마르고 굽는 동안에 금이 가서 물이 새지 않는다면, 무엇을 담아 주기도 하고 그 담긴 것들을 내 입가로 날라주기도 할 것이다. 흔하디 흔한 흙덩이가 말이다. 나대로 좋은 그릇에 대한 생각을 무척 많이 하며 물레질을 한다. 오랜 시간 가깝게 두고 싶고, 쓰면 쓸수록 아껴지고 마음이 가는 그릇을 생각하며 물레질한다. 그리고 흙은 흙이었으면 좋겠다. 제자리에 선다는 것이 그러한 것이 아닌가 싶어서 말이다. 그러나 흙이 그릇이 되는 동안에 내가 있게 마련이다. 거기에 내 흔적이 남겨질 수밖에 없다. 물론 흙은 흙이어야 하므로 최소한 만큼의 흔적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 최소한의 흙이 갖는 무른 유연함을 더욱 돋보여지게 하는 듯하다. 항상 지나치고 넘침에 대해 고민하기도 한다. 그리고 즐겁게 물레질하려 한다. 즐거운 마음이 즐겁게 손을 움직이고 그 손은 즐거운 유연함을 갖는 그릇을 만들게 되기 때문이다. 학교 오가는 영암길에는 붉은 황토가 많다. 특정한 곳도 없다. 적당한 곳에서, 준비한 자루에 흙을 담아와 작업을 한다. 이러한 행동이 그릇을 흙으로 만든다는 평범한 이치를 다시금 마음에 두게 한다. 지나치게 거칠다 싶으면 화장토를 입히고, 그렇지 않으면 흔한 백유나 청자유, 혹은 재유를 입혀 굽는다. 가끔 지나친 장식이 흙의 본성을 가려 망치기도 해 각별히 신경 쓰이는 부분이다. 어쩌면 주관적인 내 취향의 그릇을 만들어 배려보다는 내 자신의 즐거움을 크게 하는 이기적인 마음이 없지도 않겠다. 그래서 많은 이들을 흡족하게 하는 그릇을 만들겠다는 생각이나 훌륭한 그릇을 만들어 내는 일은 능력 밖의 일인 것 같다. 다행히 누군가 나의 그릇에 관심이 있어 하면 그것으로 족하다. 중요한 것은 내가 흙이 되고 흙이 내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스스로를 닮게 되는 그릇을 만든다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듯하기 때문이다. 옛날 요도구가 변변치 않았던 때에 그릇들은 나름대로 덜한 완성도를 가질 수밖에 없는데 나는 그러한 결함(?)에 자꾸 마음이 가게 된다. 그리고 완전함보다는 덜한 완성에 자꾸 마음이 간다. 이는 흙이 흙다운 재질감을 많이 느껴지게 하는 이유인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옛날의 것들은 나의 작업과 어떠한 관계를 갖게 되기도 하는데 전통의 현대화 같은 큰 표현은 뒤로 하고, 예나 지금이나 수공예는 재료와 완성품 사이에 사람 손이 있어 그 흔적이 남게 마련이다. 발달된 기계에서는 손의 흔적이 없어 생명력이 떨어지는 그릇들이 생겨나게 되는데 이러한 양산된 흔적 없는 것들로부터 오는 공허함도 내가 작업을 하는데 있어 방향을 정하는 쉬운 기준이 되기도 한다. 아무튼 사발을 공부한 시간이 꽤나 지났나 보다. 더러는 사람들이 사발 만드는 사람이라고 하는걸 보니 말이다. 사발의 모양과 크기와 쓰임새는 물레질에 꽤 적당한 훈련의 대상이고, 또한 반복하고 또 반복하는데서 얻게 되는 것은 대부분의 공예에서 요구되는 잘 숙련됨을 얻게 되는 듯 하다. 목물레를 차며 사발을 만드는 동안에 사발의 몸에 남게 되는 굵은 손자국과 꼭 필요한 만큼의 작위 같은 것에 관심을 갖는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로 많은 시간을 들여 고민도 해본다. 사발의 모양은 만들어지는 과정과도 긴밀하게 관계되어져 있음을 느낀다. 만들면서 자연스레 완성되어지는 모양이다. 흔히 바닥이 좁고 전이 넓어지는 모양들은 쉬운 물레차기이다. 그리고 그릇의 몸에 남는 굵은 손자국은 더딘 물레회전과 상대적으로 빠른 손놀림이 있어야 가능하다. 지금처럼 전기동력이 없던 옛날에는 적은 회전으로 그릇을 만들어야 힘을 덜 들이고 많은 사발을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사발은 작은 수고로 많이 만드는 방법에서 나온 모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역시 이러한 최소한의 흔적이 재질감을 많이 잃지 않는 방법이 아닌가 싶다. 신기한 일이다. 이러한 쉬운 방법에서 시작되는 큰 아름다움이라.... 하지만 쉽게 물레질 할 수 있는 모양이면서 그 쉬운 모양이 깊은 맛(?)을 갖기에는 시간이 지날수록 어려워짐은 또 무엇인가. 이러한 적은 회전과 빠른 손놀림에서 그릇에 남겨지는 것들은 수많은 반복과 훈련 뒤에야 아주 서서히 온전한 것으로 남는 듯 하다. 목물레를 찬다. 전기물레처럼 빠르지도 일정하지도 않다는 것이 오히려 사발 만들기에 적절한 도구임에 틀림이 없다. 전기가 아닌 발로부터 생기는 동력이라는게 틀이 아닌 손과 화합함으로서 더욱 조화롭게 되는게 아닐까 생각한다. 마음가는대로 조절이 쉽고, 그 때문에 흙의 유연함이나 그릇 안팎에 굵은 손자국이 수월하게 남겨지게 된다. 굽을 깎는 일과 유약치는 일도 그렇다. 굽은 대체적으로 유약이 묻지 않아 제 살을 드러내는 부분이다. 그래서 많은 궁리를 하고 최소한의 손질을 한다. 대부분 그렇듯이 나에게 많은 궁리나 고민은 결국 휙하고 마감하는 일이 되곤 한다. 유약치는 동안에도 그릇을 잡는 손에 가려 제 살을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억지로 가리지는 않는다. 더러는 안이하게 보일지라도 말이다. 그러한 것들이 흙과 물레와 내가 어우러진 흔적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에서이다. 목물레와 퍼온 흙은 그것들 나름대로 오는 또 다른 미감을 찾을 수 있는 것 같다. 작업에 대한 자세 같은 정신적인 것도 함께 포함하여 말이다. 매번 다짐하고 생각하는 것이지만 내 작업이 가장 손에 익는 날이 항상 내일이리라. 내가 가장 잘 만든 그릇은 항상 내일 만들어 지리라. 어제 물레질한 그릇이 오늘은 부족해 보이고, 작년 이맘때 만든 그릇이 행여 누구에게 보여질까 감추고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완벽한 그릇이 세상에 어디에 있으며 그 척도는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 하고 스스로 위안도 해본다. 그리고 내게는 속 좁은 변심도 있다. 좋아 보이는 것에 대한 변심이 있다. 그래서 다행인지 작업에도 변화가 있게 되는 것 같다. 물레질을 20년 정도 하고나면 그래도 내 그릇이예요라고 눈을 마주치며 얘기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아직도 좀처럼 눈 마주침이 어색하기만 하다. 부족함이 많다. 한참 작업할 수 있는 나이라 생각하면 마음이 편안해지긴 하지만 또 어느 때부터인가 긴장되고 초조해지지나 않을지… 서서히 작업하련다. 멈추지 않고 말이다. 무슨 일을 오래도록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이지 축복받은 일이 아닌가 싶다. 지금 까지 즐겁게 작업할 수 있다는 일이 감사하다. 그리고 고민하고 싶다. 올바르게 고민하고 싶다. 차 한 잔 마시고 물레질을 해야겠다. 오늘 마음에 드는 그릇하나 만들어 낼지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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