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속의 은유
글/사진 모인순 남서울대학교 환경조형학과 교수
도자 영역에서 23년의 세월을 보내면서 그동안 참으로 많은 사회, 문화적인 변화들을 겪어왔다. 대학 초기에 도자는 낭만주의적인 도인(道人)의 신화와 장인정신을 추구하는 참으로 신성한 영역이었고, 대학원 시절에는 추상표현주의 도자로부터 유래한 현대 예술의 흐름을 수용하는 개념과 예술을 떠올리게 하는 예술적인 영역이었다. 1987년도 대학원의 졸업논문은 추상표현주의 도자를 통해 본 예술성과 도예개념의 확대된 시각을 중심으로 한 것이었다. 그 이후에 시작된 나의 작업에는 거창하지는 않으나 문학적이며 인류학적인 철학과 감성을 담는 열정들이 동반되었다. 이 당시의 작업의 근원들은 그리스·로마 신화의 비유를 통한 보편적인 감수성을 이끌어내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1회 개인전의 페르세포네의 연가는 1년의 반은 지상에서 나머지 반은 지하에서 살아야 하는 페르세포네를 통한 자연의 순리와 서정성을 주제로 표현되었다.
2회 개인전의 슬픈 죽음과 행복한 부활은 수렵-채집인들의 삶의 흔적이 묻어있는 단순한 돌칼로부터 시작된 원시인들의 삶에 대한 생각과 감정을 통하여 죽음은 항상 부활을 기원하면서 행해졌던 시대에 끊임없이 삶과 죽음을 순환해가는 생명에 대한 인간의 첫 반응물로서 혹은 첫 상징물로서의 칼, 나무, 샘, 태양, 뱀들의 에스프리를 주제로 표현되었다.
1994년 3회 개인전은 백공(百工)의 의자란 주제로 옛날에 제작된 물건들에 내재된 생명력을 의자의 이미지를 통하여 표출하여 보고자 한 작업이었다. 이 시기까지의 작업들은 모태로부터 이어진 절대적 향수와 기억의 끈을 연결시키고자 한 나름대로의 시도로 이어져 왔다.
1996년부터 남서울대학교 환경조형학과에 근무하게 되면서부터 작업에 대한 생각은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우리 학과의 도자는 건축과 연결된 수업을 지향하는데, 그 중에서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는 산업제품으로서의 타일은 비전만 제시하고 있을 뿐 실질적인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은 영역이었다. 다른 학교의 타일이나 도벽과 차별화된, 실질적인 산업타일의 과정과 디자인을 교육시키기 위하여 나는 새로운 마음으로 산업체와 연결된 타일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1998년도의 4회 개인전 창(窓)을 통한 여백 찾기는 한국인의 꿈과 정서를 대변하는 민화와 자연물을 소재로 벽에 설치된 공간적인 구조를 통하여 주위환경과 정서적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상징적인 의미를 찾고자 한 것이었다. 이 시기가 지나고 산업체의 타일에 대한 연구도 무르익을 무렵부터 나는 타일에 관한 문화적 잠재력의 도구로서 가능성과 대학에서의 실질적인 교육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들을 섭렵할 수 있었다. 여기에 덧붙여 1990년대 중반부터 몰아닥치기 시작한 컴퓨터의 조형세계는 도자영역의 디자인과 교육에도 영향력을 발휘하였고, 산업체의 타일을 교육시키는 데도 필수적인 영역으로 자리 잡았다. 타일의 연구가 지속되고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자로서 주관적인 작업의 방향을 보편화하려는 노력은 나의 작업과 함께 이 시기의 관심사들을 반영한다.
올해에 가진 5회 개인전을 통하여 나는 산업제품과 작가적인 합일점을 추구하는 타일의 설치를 통한 작업을 선보였다. 공간 속의 은유란 주제로 시각적, 시간적, 문화적 그리고 개성적이며 주관적인 대화와 교류를 이끌어낼 수 있는 은유적 의미의 타일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고 싶었다. 실용적 구조를 거스리지 않는 자유로서 타일이 형성해 가는 공간의 은유는 가능한 것인가? 내 작업은 산업화될 수 있는 가능성과 동시에 작가의 감수성과 주관적인 해석을 추구하고 있다. 나는 또한 타일의 물성과 대비되는 물질인 인조모피와 유리 등을 같이 사용함으로서 물질들의 극적인 만남에서 이루어진 긴장감의 이완과 수축을 통하여 삶의 에너지를 재충전할 수 있는 타일의 공간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건축물과 연관된 타일이 우리의 생활 속으로 들어왔을 때 인간과 더불어 호흡을 하는 느낌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더 나아가 타일 산업제품을 명품화 시키는 의도와 함께 타일을 좀더 신선하게 연출하는 시각을 제시하고자 한 것이었다. 전시장이 마치 시(詩)의 공간인 것처럼 느낄 수 있도록 하여 관객들이 자신의 일상에서도 타일을 통하여 문화와 예술 그리고 개인의 사유까지를 공유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볼 수 있도록 유도하고 싶었다.
어느 작가나 자신의 환경과 시대를 나름대로 반영한다. 나의 경우에 5회의 개인전을 거치면서 매번 다른 성격의 작업들을 추구하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은 내가 자리한 위치에서 관심을 갖게 되는 문제점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이를 실천하고자 노력해 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디지털 혁명으로 시작된 21세기의 사회, 문화적인 변화들을 겪으면서 디지털과 연관된 분야와 문화만이 미래의 지표일 것이란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며, 육체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아날로그의 근원이며, 도자의 영역 또한 인류의 역사와 함께 진행되어 왔으며 디지털화 될 수 없는 아날로그적 속성을 지닌 매체이다. 이러한 속성들이 디지털 사회의 결여된 요소들을 보완해 주리라 예상되며 이러한 점에서 미래는 도자 영역과의 접촉이 더욱더 절실하게 요구되리라 전망된다. 이 시대의 교육자로서 그리고 작가로서 나의 이제부터의 관심은 디지털 시대의 아날로그 언어인 도자의 생명력과 사회적인 역할에 대한 구체적인 모색일 것이다.
작가약력
1958 전라남도 출생
1984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응용미술과 졸업
1987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원 도자공예전공 졸업
개인전 5회
단체전 85회
저서, 점토혁명-예술언어로의 전환, 1994, 보문당
현, 남서울대학교 환경조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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