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통도자기의 올바른 이해와 현대화
글/사진 김판기 도예가
우리 전통 도자 미술은 조화로움과 균형의 미이며 자연의 미이다. 자연에 순응하고 동화되어 치우침이 없고, 특히 기능성과 실용성이 강조되어 단순하면서도 격조가 있는 것이 우리 전통도자기이다. 또한 장식이나 화려함이 절제된 여백의 미가 돋보임을 볼 수 있다. 한국의 도자 문화는 중국내륙의 영향을 받아 발전하였으나 오랜 기간을 거치면서 독자적인 도자문화를 일구어냈던 것이다.
고려시대의 청자(靑磁)의 미적 특징은 비취옥과 같은 신비한 색깔과 매끄럽게 흘러내리는 아름다움이다. 또 독특한 상감(象嵌)기법의 응용 등으로 그윽하고 깊은 맛이 있다. 그리고 태토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빛깔이 청자 유와 함께 어울려 같은 빛깔이 되도록 비례를 맞춘 청자는 고려 장인의 슬기와 미학적 기질이 담겨 있다. 완벽성과 독창성, 세련된 형태와 격조 있는 자태는 우리 도자 문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것이다.
조선시대 백자의 미적 특징은 소박의 미와 자연의 미라 할 수 있다. 백자태토의 고유성질인 부드러움과 자연의 일부로서 흙의 본질을 돋보인, 즉 투명한 유약의 효과가 태토의 본질과 장식에 쓰여진 다른 재료들이 그대로 드러나고, 유연한 태토의 물리적 성질에 거슬리지 않으면서 지나친 억지와 과장이 제거되는 형태로 만들어 졌기 때문에 자연 본래의 물성을 존중하고 본질을 중히 여기는 자연의 미가 백자의 특징이다.
분청사기의 미적 특징은 대범한 기형과 자유분방한 문양으로 15~16세기를 대표하는 우수한 민족문화의 독창성이 돋보이는 걸작품이다. 또 이들은 각자 용도에 따라 기능이 우선되었다 .그러면서 그 속에는 다양함이 있으며 너그러움이 있고 꿈과 낭만이 깃들여 있으며, 익살과 해학이 숨어있고 운치가 있다. 이는 삼국 후반기부터 18세기까지의 천년에 걸쳐서 제작되어 온 작품들을 보면서 항상 느끼는 선조의 기운이다.
디지털시대인 21세기는 세계를 하나로 묶어주는 각종 정보와 지식이 인터넷이나 방송을 통해 무차별적으로 쏟아지고 있다. 빠른 속도로 흘러가는 정보의 다양성은 각기 다른 문화에 대한 이질적인 경계와 거부감을 줄여 주었으며 다양한 문화를 빠르게 습득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러한 시대에 도자작업을 하는 사람으로서 우리 전통 도자를 우리 시대의 감각에 맞추려 함은 항상 고민해야하고 괴로워해야 하는 숙제인 것이다. 즉 과거에 이룩한 결과에 집착하기보다는 선조에게 물려받은 잠재되어있는 미학적 전통과 기술력을 현재와 미래를 위해 접목시켜 한국 도자 전통을 새로이 개척해 나가는 것은 우리 모두의 숙제이다.
전승·전통·현대
현재 한국의 도예 작가 분포는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과거의 유물과 기술을 그대로 복원하고 재현하는 전승 도자작업을 하는 작가들, 둘째는 옛 것의 형식이나 맥락을 이어가면서 이 시대의 미감이나 미의식을 가미하려는, 전통의 현대화 작업을 하는 작가들, 셋째는 전통도자 개념을 탈피하고 서구 조형을 수용하여 자유분방한 작업을 하는 작가들이 있다.
전승도자 부류에 속하는 작가들은 과거의 작품을 재현해 냄으로서 창조적인 작품으로의 접근이 쉽지 않다고 하지만 옛것을 묘사함으로서 옛것을 극복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작가들이 많다. 무의미한 복제는 아니라는 말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들이 과거의 기법과 형태를 그대로 재현하여 복제품을 양산하는 듯하지만 그들도 그들 나름의 작업에 대한 철학을 가지고 있는 작가들도 많다는 말이다. 그러나 과거를 통해 한국 도자에 담긴 정신을 찾아내고, 미적인 성격을 오늘에 되살리고자 하는 장인정신이 부족한 작가들도 많다. 자신의 방향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고독한 장인 정신이 결여되면 복제품일 수 밖엔 없을 것이다.
전통의 현대화 부류는 전통, 즉 과거의 형식과 맥락을 이어나가면서 이 시대의 미적 의식이나 감수성을 작품에 불어넣어 새로운 전통을 창조하고자 하는 작가들이다. 이들 작가들에게 있어서 전통이란 자신의 작품을 위한 자양분이며, 미적 성격을 규정짓는 중요한 요소들이다. 그들은 전통에 함몰되는 것이 아니라 전통 속에서 한국 도자의 미학적 정체성을 찾고, 자신의 독자적인 세계를 찾아가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또한 공예적으로 나아갈 지 순수 미술을 지향하는 쪽으로 나아갈 지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들이야 말로 한국 전통도자의 현대화를 주도해갈 수 있는 부류라고 생각된다. 그렇다고 전승도자를 추구하는 것이 가치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전승은 전승대로 가치가 있고, 전승을 깊이 있게 추구하는 작가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통도자의 현대화
그러면 전통도자의 현대화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전통도자를 정확히 공부하여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는 전통도자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얼마나 깊이 있게 이해하고 있나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전통에 대해 너무나 피상적으로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우리가 옛것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자주 갖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그저 소장품의 사진과 크기 문양 등을 기술한, 내용이 비슷비슷한 책이나 아니면 개인적으로 박물관을 방문하여 유리너머로 바라보는 것이 전부인 것이다. 필자는 지난 여름 옛 작품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들어보고 만져보고 쓰다듬어 보면서 새로운 감동과 선인들의 숨결을 제대로 느껴볼 수 있었다. 이와 같이 직접 느끼고 체험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자주 주어진다면 전통에 대한 이해가 바로 설 것이며 발전적인 작업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둘째, 재료와 기법의 정확한 이해와 반복된 훈련으로 기술력을 높이는 것이다. 지나치게 자연스러움만을 추구하여 우연의 효과만을 기대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우연의 효과를 기대하기보다는 정확하고 집중적인 작업을 통하여 전통 도자가 가진 참뜻을 터득해야 할 것이다. 그런 연후에 비로소 전통을 체득하여 자신의 작업에 접목시킬 수 있을 것이다. 전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전통을 완벽하게 이해했을 때 가능한 것이다. 전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 비로소 자신만의 독창적인 조형세계를 구축할 수 있으며, 그 세계는 한국적 미학과 전통에 바탕 한 새로운 작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각자 가장 자신 있는 길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순수한 예술품을 창작할 것인가 아니면 다량생산의 산업도자의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산업도자를 선택한다 해도 위에서 이야기한 것들을 올바로 이해하고 하는 것과 아무 생각 없이 유행에 휩쓸리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전통의 맥락을 이으면서 이 시대가 요구하는 작품을 창작하는 것은 한국의 도예가라면 반드시 가져야할 태도이다. 전통도자가 가지고 있는 정체성을 파악하여 현대화 할 때 한국 현대도자의 진정한 발전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고려청자와 조선백자, 그리고 분청사기가 있었듯이 이제 이 시대의 전통인 한국현대도자(이시대의 도자)의 기반이 조성되어야할 시기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통에 대해 정확한 이해를 위한 연구와 해석이 계속되어야하며 옛 것의 기술과 장인정신을 뛰어넘어 새로운 예술정신과 미학을 세워나가야 할 시기이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도자기는 실용성이 우선이라고 본다 .예술성 이전에 도자기의 출발은 생활기물인 것이다. 옛부터 우리 자기는 예술작품보다 생활의 용기로 만들어졌으며 자연스럽게 예술적 심성이 가미되어 독특한 미를 발산하는 예술품이 된 것이다. 시대가 흐름에 따라 예술작품으로 인정을 받아 세계적인 미술품으로 칭송을 받지만, 조선시대 장인들이 만들었던 것은 자기 심성에 충실한 진실한 그릇이었던 것이다.
필자약력
58년 전북 순창 生
98년 일본 녹아도 여명관 한일도자기교류전
2000년 제28회 동아공예대전 대상 (동아일보사)
2001년 제1회 세계도자비엔날레 국제공모전 입선
2001년 제1회 강진청자공모전 최우수상 수상
2001년 한국전통도자전 참여작가
단체전 30여회, 동아공예동우회 회원
현, 경기도 이천 지강도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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