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호랑이를 무엇으로 바라보아야 하는가
글 김종대 _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원
한국에서 호랑이는 어떤 존재일까? 우리 민족이 호랑이를 전통적으로 어떻게 생각하여 왔을까? 고선례 작가가 추구하는 작품의 이해를 위해서는 먼저 호랑이의 상징적인 속성을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호랑이는 오래 전부터 산신으로 믿어온 숭배 대상이었다. <단군신화>의 곰과 호랑이는 좋은 예로서, 단순한 동물이 뜻하는 것이 아니라 곰과 호랑이를 신(神)으로 모신 종족을 의미한다. 또한 『삼국지』에는 지금의 함경도지방인 예(濊)에서는 호랑이를 신으로 모시고 제사를 지냈다는 대목이 있다. 이들 기록은 청동기시대 이전부터 호랑이가 우리 민족에게는 신성한 존재로 모셔졌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산신도를 보면 흰 수염을 멋지게 기른 할아버지의 모습과 그 옆에 호랑이가 마치 강아지 형상으로 묘사되어 있다. 호랑이가 산신의 심부름꾼으로 전락된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전통적인 산신 개념이기보다는 중국의 도교문화 영향 때문이다.
실제로 호랑이가 산신의 모습으로 묘사된 기록은 『고려사』에 실려있다. 왕건의 6대조 성골장군인 호경이 산신인 호랑이와 부부관계를 맺었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중요한 대목은 바로 호랑이가 여성이란 점이다. 실제로 지리산이나 치악산의 산신은 여성으로 나타난다. 결국 우리의 전통 신앙개념에서 산신은 호랑이였으며, 여성이었다는 것이다.
한국의 민간신앙에서 나타나는 호랑이가 산신이었다는 것은 호랑이를 외경(畏敬)의 대상으로 인식했음과 다르지 않다. 그 만큼 호랑이가 무서운 존재였으며, 사람들을 괴롭히는 귀신이나 요괴들을 쫓아낼 수 있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했다.
고선례 작가가 호랑이를 자신의 의지자(意志者)로 작품화했다는 것은 그런 점에서 설득력을 갖는다. 호랑이를 통해 자신의 믿음을 상징화한 것일 뿐만 아니라, 여성인 자신을 보호하는 수호신으로서의 존재를 부각시킨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민속문화의 저변에 깔려있는 신앙체(信仰體)를 골라 자기세계로 선택한 것도 탁월한 안목이다.
믿음은 누구나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요즘처럼 종교가 발달한 시대에는 교회나 사찰을 찾아가면 그 믿음의 대상을 쉽게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자신만의 믿음을 만들어내는 작업은 지속적인 자신과의 싸움이다. 치열한 자기와의 싸움을 통해서 온전한 자기만의 믿음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 과정은 말로 표현하기 쉽지만, 그 결과를 형상화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 만큼 자기만의 믿음은 단순한 믿음이 아니라, 절대자적인 존재와도 동일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고선례의 호랑이는 동물원에서 보는 호랑이를 단순형상화한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 호랑이를 들여다봄으로서 무언가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 호랑이로서 이해하는 것이 올바르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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