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 김영희 _ 한국차인연합회 <차인> 편집장
허황옥 왕후로부터 의례차로 발전
차로 예를 표하는 의례차가 특징인 한국의 차문화는 약 2천년전(서기 48년) 가락국의 시조 김수로왕의 왕비가 된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이 차씨를 가져와 김해 백월산에 심었다는 기록에서 시작되며 문무왕 때(서기 661년)에 세시(歲時) 차례(茶禮)에 차를 제물로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 또 신라 흥덕왕(興德王) 3년(서기 828년)에 당에 사신으로 간 대렴(大廉)이 차종자를 가져와 왕명으로 지리산에 심어 이때부터 차가 성행했다고 한다.
신라의 차생활은 화랑도(花郞徒)들이 차를 끓여마셨다는 다조()와 석지(石池), 원효방, 충담선사의 마륵세존 차공양, 당나라에 우리 차를 전한 김교각의 지장차 등에서 차가 성행했음을 알 수 있고, 토산 엽차와 병차(餠茶)를 토기에 마셨을 것이며 ‘차’자를 새긴 안정영잔이 유명하다.
차가 자라기에 적합한 백제에도 나당연합군의 소정방이 지리산에 찻씨를 뿌렸다는 기록과 근초고왕(346-375)때부터 보성 지방과 서남해안 지방에 차가 성하였고 그 후 일본에 차 및 도구를 전달했다는 설이 있다. 고구려도 무덤에서 지름 4cm의 떡차가 출토되었고, 비석에 ‘명(茗)’이라는 글자를 새겨놓은 것 등에서 당연히 차를 마셨을 것으로 보고 있다.
불교국가인 고려시대는 차문화가 최고로 번성했던 시기로 국가의 중요한 행사나 의식은 물론이고 사찰의 행사나 가정의 접빈과 관혼상례에 차가 사용되었다. 연등회(煙燈會)와 팔관회(八關會), 사신맞이, 왕태자와 왕비의 책봉 등 왕가의 행사와 군신연회, 중형주대(重刑奏對: 임금께 엄벌을 여쭙는 것) 등의 다례가 있었고, 다례를 관장하는 다방(茶房)과 조정의 찻일을 받드는 차군사(茶軍士), 나라에 차를 바치는 다소(茶所)와 거리에서 차를 파는 좌상과 다점(茶店)과 다방이 있었다. 차겨루기(鬪茶, 茗戰)가 유행했고, 뇌원차(腦原茶), 유차(孺茶), 용봉차 등의 차를 마셨으며 연고차, 말차의 점다법과 잎차를 우려마시는 포다법이 성행하여 중국으로부터 많은 양의 차가 수입되었다.
송나라 사신 서긍의 <고려도경>에 고려인의 생활이 상세히 적혀있는데 금화오잔(金花烏盞), 비색소구() 등에서 다완과 찻잔 등이 도자 발달에 큰 역할을 했으며, 이규보 정도전 이 색 등 유명 차인들의 차시(茶詩)가 그 시대의 격조높은 차생활의 이면을 노래하고 있고 해무리굽 청자다완이 그들 고려인의 정신적 이상향을 보여주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숭유억불 정책과 과도한 차세, 잦은 외침에 의해 전체적으로 차가 쇄락해지나 왕가의 크고 작은 행사와 사신맞이, 불가의 의식과 가정의 관혼상례 등에 차가 사용되었다. 조정에 다방이 있어 차업무를 관장했고, 사옹원 등에 차를 관리하는 차모(茶母)와 다시(茶時)라는 차를 마시며 형벌을 정하는 제도가 있었다.
한국 최초의 차노래 이목의 <다부(茶賦)>와 초의 선사의 <동다송(東茶誦)>과 <다신전>이 있으며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등 굵직한 차인들이 자연과 벗하며 유유자적하게 차를 즐기며 차의 정신을 전하고 있다. 떡차, 연고차, 녹차와 황차, 청차, 홍차와 꽃차 등 다양한 차와 초의차, 백운운판차, 분청과 백자의 잎차용 다관과 다완, 찻잔이 아름답다.
1979년 차인회 구성 본격적인 차문화 시작
근대 한국의 차문화는 일제 시대에 고관들의 다화회(茶話會)와 여학교에서 일본식 다례교육이 실시되었으며 광주 무등다원과 정읍의 오가와 차밭, 보성에 대단위 차밭이 조성되어, 몽고에 약 5만톤의 돈차를 수출하기도 했으나 반면 많은 양의 차가 수입되었다. 주로 잎차인 덖음차를 마셨고, 옥판차라는 떡차와 황차(荒茶)를 만들었고, 하동 등에서는 차잎을 말려두었다 돌배 등을 넣고 다려 감기 몸살에 마시는 민간요법이 전해오고 있다.
해방 후 6·25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으며 한국의 차문화는 그 맥이 끊어진 듯 하였으나 승려와 몇 몇 선각자들에 의해 근근히 그 맥을 이어왔다. 초의선사의 법손인 응송스님과 광주 무등산 춘설원의 남종화의 대가 의재 허백련 선생, 사천 다솔사의 효당 최범술 선생은 근대 한국 차문화의 큰 맥이 되신 분들이다.
1977년 효당의 영향을 받은 진주차인들의 모임이 결성되고 이어 해남에서도 고 김봉호 선생을 중심으로 해남차인회가 결성되었으며, 1979년 1월에 당시 코리아게이트로 유명했던 현 한국차인연합회 박동선 이사장이 민족을 위해 뭔가 일을 하고 싶다는 바램으로 전국의 차인들을 주선해 한국차인회가 결성돼 현대 한국 차문화 중흥의 기틀이 세워졌다.
전국의 승려, 예술가 등 50여명의 차인들이 모여 한국의 전통정신 문화인 차문화의 중흥을 위해 그 첫 사업으로 초의선사가 주석하였던 일지암을 복원하고, 5월 25일을 차의 날로 제정하는 등 일련의 사업을 추진하면서 녹차 문화와 더불어 토우 김정희 선생에 의해 5인 다구가 선보였다.
문화예술인에서 시작된 차문화 운동은 전통예절 운동과 더불어 급물살을 타고 전국의 학교, 군부대 등으로 확산되었고, 일본인들의 주문에 의한 이도다완 등 다기 제작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차전문 교육기관 설립 대중화 불씨
1980년대 초 이방자 여사의 낙선제 다례는 많은 사람들에게 다기와 차를 내는 형식에 대한 갈망을 심었고, 광주요 고 윤귀옥 여사와 현 한국차인연합회 신운학 고문 등이 행다를 가르치기 시작해 일본을 본딴 행다가 우리 차의 형식으로 자리잡아가고 있으나 아직도 ‘이것이 한국차다’라 할 것은 정리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행다가 유행하면서 여성 상대의 차보급이 늘어나 부산의 정상구 박사가 이끄는 한국다도협회와 1991년 인천 이귀례 여사의 한국차문화협회가 생기고, 그 후 다시 10년이 흐르면서 김의정 여사에 의해 명원문화재단이 설립되면서 전국적으로 우후죽순처럼 차법인체가 생겨나고 있다.
현재 유치원을 비롯한 초·중·고·대학과 평생대학, 사회교육원, 문화원 등에서 차를 가르치고 있고, 사찰과 명상 단체, 교회 등에서 차의 생활화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성신여자대학교와 성균관대, 한서대, 목포대 대학원 과정에 차전문학과와 원광디지털대학이 문을 열었고, 전문대에서도 차전문 학과가 생겨나고 있다. 차전문 사이트인 티박스 등 차관련 사이트의 활동이 활발하고, 전국에 걸쳐 차전문 찻집이 옛 다방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골동가였던 인사동도 차와 다기 판매점이 줄을 잇고 있다.
지자체와 어울려 각 지방의 축제에도 차가 등장하고 있다. 30년의 역사를 가진 보성다향제를 비롯해 하동야생차문화축제, 초의선사탄생문화축제, 세계도자비엔날레, 이천도자기축제, 여주도자기박람회, 문경찻사발축제, 김해도자기축제, 무안연꽃축제 등이 대표적이고 최근 티월드페스티발이라는 상업적인 차문화장도 열렸다.
각 차단체별로 개최되는 행사로는 24년의 역사를 가진 한국차인연합회(회장 박권흠)의 5월25일 차의 날 기념국제차문화축제와 올해의 명차, 8월의 전국차생활지도자연수회, 10월의 청소년차문화대전 및 올해의 차인상 수상이 있고, 차문화연합회(회장 이귀례)의 5월의 전국차인큰잔치와 전국청소년차문화전, 인설차문화예절경연대회(6월), 한국다도협회(회장 정상구)의 7월의 주년행사와 다촌학술상 시상식이 있으며 해운대문화축제 등 각 지역 문화축제와 연계해 그 수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아름답고 몸에 좋은 차’ 도자문화와 상생해야
지금 한국에는 급물살을 탄 듯 강한 차바람이 불고 있다. 기업의 마인드를 가진 (주)태평양이 차산업을 주도하며 차의 효능에 관한 이미지를 만들어냈고, 한복 차림의 아름다운 차인들은 여유의 상징이 되어 차라면 무조건 ‘아름답고 몸에 좋은 것’이라는 이미지가 형성되면서 때마침 웰빙의 바람을 타고 무섭게 식음료계와 문화계를 강타하고 있다.
현재 국내 차인구는 약 300만으로 추산되고 있다. 1980년대 1인당 차소비량이 2g정도 였던것이 2003년에는 약 50g이 되었다. 그러나 세계 1인당 차소비량 340g에는 훨씬 못 미치는 수치다. 그것도 티백 소비량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실정은 안타깝다.
세계의 차 동향을 살펴보면 58개국에서 차를 재배하고 있으며, 그 중 32개국은 차수출국이고 115개국에서 차를 수입하고 있으며 차 수요는 점차 확대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도 보성, 하동, 제주, 강진 등의 3300여 농가, 2072ha에서 2,155만톤을 생산하고 (2002년 보성차시험장) 중국에서 300여톤을 수입하고 있지만 2004년에 1인당 소비량을 61g으로 환산한다면 약 1000톤, 2006년 90g으로 보면 약 2500톤이 수입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1959년 하동 조태연가에 의해 일본식 덖음차가 전해져서 대부분의 수제차가 가마에 차를 덖고 있고, 대량 생산 업체에서는 옥록차 즉 증제차에 마지막 덖음처리를 하여 향과 맛을 낸 차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또 한편에서는 전래의 떡차와 황차를 재현하고 발효차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며 편리함을 추구하여 쉽게 병이나 캔으로 마실 수 있는 RTD(ready-to-drink)의 소비가 두드러지고 있다.
찻그릇은 도공이 만들지만 차인에 의해 완성된다
21세기는 전통문화의 세기라 한다.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며 우리 전통문화를 전승하는 차문화는 차산업과 맞물려 날로 그 중요성이 커지고 있으며, 도자기 한복 한과 한옥 전통가구 등과 전통예절 선비정신 등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일깨우고 그 아름다운 풍습을 오늘에 되살리며 개인의 삶에 향기를 더하고 있다.
차는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의 애호를 받을 것으로 기대되며 차의 옷이라고 칭해도 과언이 아닌 다기류의 큰 몫을 차지한 도자문화에 대한 깊은 관심과 노력도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찻그릇은 도예가에 의해 만들어지지만 차인의 손과 마음에 의해 완성되어가므로 차에 정신이 깃들어야 참다운 차가 되듯 다기에도 정신이 배어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도예인들의 차에 관한 이해와 지식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차 맛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듯이 그릇에도 그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참고자료
김명배 교수의 <다도학>과 <한국차문화사>, 정영선의 <한국차문화>, 김대성의 <차문화유적답사> 정인오의 논문<세계 차생산 및 소비동향과 차의 종류> 외 <차인> 등과 티박스
필자약력
동아대학교 졸업
한문전문서당 근화서당 운영
1982년 대학다회연합회 발기인
월간 <난과 생활> 기자 역임
현, 한국차인연합회 <차인>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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