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8.25 - 2004.8.31 가나아트스페이스
채워짐과 비워짐 사이
글 윤두현 _ 자유기고가
병甁은 채워짐을 갈구하는 욕망의 기표다. 또한 그럼으로써 병은 비워짐을 전제하는 공허를 동시에 표상한다. 인사동 가나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린 이지은의 두 번째 개인전 은 도자의 기능성과 조형성의 문제에 대한 고민의 결과이면서, 한편으로는 글머리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병에 대한 관념적 통찰을 통해 궁극적으로 인간 존재의 근원적 조건을 관조하고자 하는 전시다. 다시 말해서 전자는 형식적 경계에 대한 내적 극복의지이며, 후자는 병이라는 물리적 사물을 통해 우리의 삶이 갖는 모순적 양태를 유효하게 반영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나타내는 것이다.
일산의 작업실에서 작업을 지속하고 있는 작가 이지은은 두 해 전 역시 가나아트스페이스에서 가졌던 첫 개인전부터 두 번째 개인전까지 화기를 주요 테마로 하고 있다. 그렇다면 채워짐과 비워짐 사이의 거리, 결코 합의점을 찾을 수 없을 것만 같은 이 모순양태 속에서 결국 현재의 작가는 무엇을 선택하였고, 또 무엇을 포기하였는가? 이에 답하기에 앞서, 우선 캐스팅 작업에 의한 작품 전반을 꼼꼼히 살펴보면 이러한 문제에 대한 고민의 결과가 매우 흥미롭게 드러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즉 전시장에 놓여진 병들의 입구가 일부는 막혀 있거나, 액션페인팅을 연상케 하며 평면화되고, 또 일부는 아예 무형적으로 개념화된 채 공간 속을 부유하고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각 작품들의 조형적 특성들과 유색釉色 역시 매우 절제되어 있음을 볼 수 있는데, 채우기와 비우기 사이에 자리한 작가의 긴장과 고민이 역력히 드러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작가의 이 같은 작업들은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채웠으나 비워졌으며, 비웠으나 이미 채워져” 있다. 곧 이는 무엇을 선택하고, 포기한 것이 아니라, 양자의 극단적 대립 사이의 거리 자체를 사라지게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양쪽 모두를 수용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작가 이지은의 작업이 갖는 의미는 무엇보다 내적 극복을 통한 절제된 조형성을 획득하고 있다는 데 있을 듯 하다. 우선 병 혹은 화기는 장식적 기능성을 대표하는 기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작가는 화기의 기능적 특성을 최소한으로 유지하거나 아예 소거하는 등 다양하게 시도된 내적 해결의지를 통해 그것이 갖는 한계를 그 안에서 극복하고자 하는 것이다. 특히 이와 같은 작가의 시도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상당히 클 것으로 보여진다. 또한 전 작품들이 캐스팅에 의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세련되거나 날렵한 선 보다는, 액션페인팅을 연상케 하는 평면화 된 것이나, 스크래치에 의한 투박함 등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대체로 다소 투박해 보이는 듯 하면서도 자연스럽게 흐르는 선의 형태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도 이번 작품들의 의미를 더욱 남다르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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