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숨결
글 김미진 _ 미술비평가, 홍익대학교 겸임교수
김기철의 도자기는 집안과 밖에서 만나게 되는 자연의 형상을 그대로 옮겨놓았다. 그는 옥잠화 모란 연꽃 등 수 많은 야생화에서 소재를 삼으며 그 위에 앉아서 노래하는 청개구리와 풀벌레를 빚어낸다. 큰 대작도 바람이 스쳐가듯 계절의 향기를 뿜어내며 자연스러운 가운데 웅장하고 화려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마치 어린아이가 순수한 마음으로 흙 장난치듯 작업하는 노대가의 제자과정은 우리에게 신명과 함께 감동의 결과로 다가온다.
작가는 우리 전통기법을 충실히 이행해 전혀 기계를 쓰지 않고 흙을 체에 쳐서 곱게 거르는 수비에서 나온 흙을 밟고, 반죽을 하고 손으로 빚어 만든다. 번조는 은은하고 신비한 빛깔과 질감을 나타내기 위해 용가마(등요)에 육송만을 고집하여 땐다.
그의 도자기는 식물의 잎, 꽃, 열매, 연못의 물고기, 계곡의 사슴 등 자연에서 보게되는 친숙한 형상 모두를 가슴으로 보듬어 안아 만든 모습이다. 그러한 형상은 딱딱하거나 의도되지 않고 바람을 따라 자연스럽게 형태가 나타나는 편안하고 유머스러운 모습이다. 이것은 그의 언행이나 삶의 방식에서 묻어나는 유머가 언제나 사람을 즐겁게하고 무릎을 치게하는 것과 같다. 조선의 지식층인 선비들의 사랑과 함께 발전해 온 백자는 그들의 성품과도 같이 청초하고 간결하며 기품이 있다.
조선백자는 백색의 단순한 형태에서 용 모란 당초 소나무 매화 학 등의 다양한 상징적 문양을 덧붙여 자연 안에서 화사한 아름다운 기품과 더불어 회화성과 유머, 위트로 감칠맛까지 주고 있다. 조선백자가 우리 민족의 정신인 검소 질박 결백을 말하고 있듯 김기철의 삶과 작품도 그런 정신을 이어받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런 백자의 전통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또한 새롭게 현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백자와 자연색이 함께 존재하는 그만의 독특한 기법을 통해 새로운 도자기가 탄생된다. 이것은 대부분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데 안에는 백자지만 바깥은 흙빛이 나는 도자기다. 백자는 조선후기 관요에서 내놓았던 옥색이 도는 맑은 빛깔이며, 자연 흙색은 백자 흙에 전혀 유약을 입히지 않고 소나무 불길에서 나오는 유약성분이 묻어 포근하고 오묘한 느낌을 가져다 준다. 어떤 것은 잎맥을 나타내듯 흙빛 사이 옥빛이 살짝 드러나 상감의 느낌을 주기도 한다.
전통과 현대의 조화로움을 느끼게 하는 기器형 대작과 자연스럽고 소담하며 유머스러운 연적은 작가의 안목과 삶을 느끼게 한다. 자연 그대로 옮겨 온 듯한 하나하나의 작품은 무르익은 가을의 정취와 더불어 자연에 대한 노래로 들려온다.
기사를 사용하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s://www.cerazine.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