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1.3 - 2004.11.9 인사아트센터
자연으로의 회귀
글 장문호 _ 철학박사
서길용의 작품은 본래 분청사기의 빛깔, 청자의 회색이나 회흑색태토 위에 그 표면을 백토로 분장하고 그 위 표면을 회청색 유약을 씌워 번조해낸 사기에 기초를 두고 출발하고 있다.
작품에 전개된 곡물상감은 본래 고려시대 도공이 창안해 낸 고려 상감청자 기법에서 발상을 얻고 작가 자신이 선택한 벼, 보리, 조 등의 자연곡물을 무심無心상태에서 자유롭게 눌러 붙여 주고 1차 번조 후 곡물이 타버린 뒤 곡물자국의 요철을 생기게 하고, 그 요철로 이루어지는 음양陰陽의 변화상變化相을 자연스럽게 얻어내려는 기법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따라서 색화장토를 틈에 메워 넣어 무늬를 이루는 인위적인 과정도 배제된 자연성이 짙다.
이것을 조심스럽게 곡물상감이라 부르고 있지만, 실은 그 상감 소재로 쓰인 곡물은 높은 번조온도로 기화되어 사라지고 허공간인 틈만 남겨진다. 이 기법은 극히 반복적인 음영陰影효과를 나타냄으로서 좀더 공예성을 띄게 한다.
항아리 등 기물에 도입된 이장 흘리기와 요변 즉, 불을 조절하는 방법 등은 가마 속에서 자연적이고도 우연적인 변화가 생기는 것을 오랜 세월의 시행착오를 통해서 그 가늠을 적절하게 얻어낸 표면장식방법의 하나이다. 이때의 성과는 항아리의 아가리분에서 유釉가 마치 활화산의 분화구에서 흘러나오는 마그마처럼 하나의 색이 다른색으로 흘러들어가 환상적인 색의 하모니를 연출하는데 있다. 이는 그릇 바탕에 색깔을 지닌 이장이 흐르든가 흘
러 엉키든가하는 것을 통해서 그릇색깔의 변화효과를 높이기 위한 것이며 이 경우 기초유가 표면 용액으로 되서 번조과정에서 색깔을 지닌 이장을 떠돌게 하기 때문에 생기는 아름답고 신비한 현상을 자아낸다. 항아리에 음각으로 등장시키고 있는 <산>은 오늘에 사는 도예가 서길용의 꿈꾸던 이상향 그것이었으며, 보는 것뿐 아니라 간절히 보고 싶은 모델이 되고 있다. 그토록 꿈에 그리던 산과 물 그리고 우리 연근해와 냇가에 있음직한 물고기들이 아우러진 광경, 곧 그가 지금 보고 싶어 하는 자연을 그린 것이다. 웅장한 관악산을 표현하고자 할 때 부벽준付壁樽으로 간략화 된 모습으로 나타낸 것도, 물고기를 빗살로 때로는 우점준雨點樽으로 간략하고 소담하게 나타낸것도 바로 보고 싶은 자연, 관념의 세계를 나타낸 것이다. 전시작품의 대부분은 물레의 원심력을 활용한 만듦이지만 옛 기법과 디자인의 반복을 지양하고 새로운 차원에서 물레에서 벗어난 조형효과보다는 일말의 신선함을 더한 현대감각의 참신함을 자랑하고 있음이 그 타당성을 느끼게 했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항아리와 기물을 만들 때 자연의 질서를 인식하고 그것을 존중하면서 접근하려는 태도, 말하자면 지금의 우리시대에 팽배되어 있는 비자연적 세태에서 자연으로의 회귀回歸를 필요로 하는 이 시대의 모두에게 자연을 보다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들어내 보이는 어떤 방향감각 같은 것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전통도자에서 발상한 표현법을 통해 인간과 자연을 아우르는 조화와 상생의 방향으로 이끌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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