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흙을 접했던 날의 기억 지금도 가슴 벅차
순박한 토우와 온화한 불상 작업 돋보여
경기도 분당 김연희(45)씨의 집 현관문을 들어서자 신발장 가득 늘어선 화병들과 개구쟁이다움이 역력한 여자아이 토우가 맞아준다. 많은 취미도예가들이 자신이 만든 것들로 집안을 꾸미는 즐거움을 누리지만 이집에는 예사롭지 않은 그림들이 갤러리같은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 한몫하고 있다. 그림의 주인공은 지금 군대에 가 있는 김연희씨의 아들이다. 그림과 도자기와 토우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김연희씨의 집에서 그가 흙을 좋아하고 작업을 즐기는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혼자서 열정을 갖고 작업하며
주변에 ‘도자기하는 사람’으로 인식
김연희씨와 도예와의 만남은 꽤나 운명적이었다. 결혼 후 줄곧 시부모님과 함께 생활했고 큰아이의 뒤치다꺼리가 가벼워질 때쯤 늦둥이 딸을 낳게 돼 집안에 돌볼 일이 많았다. 문화센터 도예교실을 다니던 이웃을 부러워하던 김연희씨에게 흙 한덩이가 선물로 주어졌고, 너무나 기쁜 마음에 이것저것 빚어내며 밤을 꼬박 새웠다. 지금도 그날을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다. 식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어설픈 기물들을 보고는 그렇게 좋으면 배워보라는 권유를 받았지만 여의치 않았다.
그 후 2년여간을 줄곧 집에서 토우들을 만들었다. 혼자 하는 작업이라 답답한 게 많았지만, 열정은 그칠 줄 몰랐다. 그의 열정은 주변사람에게 언제부턴가 ‘도자기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갖게 했고 자연스럽게 인근 문화센터에서 도예를 수강하게 됐다. 점점 묘사력이 좋아지면서 늦둥이 딸아이를 비롯해 정감어리고 토속적인 얼굴들을 빚었다. 2002년에는 문화센터에서 작업하던 중 우연한 기회에 프랑스 주재 한국대사관 초대로 회원전시를 갖게 된다. 이 전시를 위해 김연희씨는 편안한 표정에 여성스런 부드러움을 풍기는 불상을 만들었다. 김연희씨의 불상 네 점은 프랑스로 건너가 여러 한국인 유학생의 관심을 끌었다.
자기 색깔 담은 토우작업과 불상작업
서양화과에 다니는 아들의 격려도
프랑스에서의 문화센터 회원전을 마친 직후 이영호 도예가의 개인전을 보고 그의 작품에 반해 현재까지 이영호도예교실에서 작업하고 있다. 옹기토에 흰색과 붉은색 검정색 화장토를 이용해 상감하고 무유번조하는 이영호 도예가의 기법을 배우고 있다. 그동안 해온 토우 작업도 화장토를 사용하거나 상감 등의 변화를 주며 병행하고 있다. 이곳에서 작업한 후로 “형태가 안정적이고 비례감이 좋아졌다”는 서양화 전공생 아들의 평가도 큰 힘이 된다. “이영호 선생님이 워낙 엄격하게 가르치는 편이에요. 아무리 공들여 만든 것도 별로다 싶으면 가차 없이 버리라고 말하세요. 처음엔 그런 것들이 섭섭했는데, 점점 제가 만든 것들을 냉정하게 보는 눈이 생기더라고요.” 내년에 회원전을 계획하고 있어서 요즘은 매일 도예교실에 나가고 있다. 전시에 낼 작품을 감안해서 작업하면 스스로 작업에 임하는 태도가 더 신중해진다. 옹기토에 상감한 화병이며 항아리들은 잔잔한 빗살무늬가 빼곡하다. 이영호 도예가의 빗살무늬 상감에 연꽃무늬를 더했다.
거의 매일을 공방에 나가지만 수시로 집에서도 작업한다. 딸아이의 방 한켠에 작업용 책상을 하나 두고 손에서 흙이 떠나지 않게 한다. 집에서 작업한 것들을 가지고 다니면서 번조하려니 깨지기도 쉽고 번거롭지만 살림하면서 틈틈이 작업할 수 있어 좋다. 작업한 것들을 차로 운반해 주는 남편도 귀찮은 내색 없이 도와준다. 초등학교 4학년에 다니는 작은 아이는 김연희씨가 처음 흙을 만질 때부터 함께 관심을 갖고, 엄마가 작업하는 모습을 지켜보곤 했다. “학교에서 책을 보다가 제가 좋아하는 와당이나 솟대 장승 등의 그림이 있으면 책을 빌려와서 보여줘요.” 거실에는 김연희씨의 도자기와 토우들이 대부분이지만 간간히 삐뚠 모양의 딸아이 작품도 눈에 띤다. 작업에 점점 몰두하게 되면서 집을 비우는 일도 많은데 시부모님이 이해해주시고 격려해주셔서 늘 감사히 여긴다.
불심 보다는 아름다움을 담은 불상
새벽녘 작업으로 온화한 표정 찾아
김연희씨의 불상은 불교신자로서의 염원과 마음이 담겨있기도 하지만 일반적인 종교색채와는 사뭇 다르다. 단아하고 편안한 표정과 연꽃에 얼굴을 기대고 있는 모습이 신앙의 대상이기 보다 탐미의 대상으로 더 와 닿는다. 불상작업을 할 때 심란하면 표정이 잘 나오지 않아 주로 새벽에 표정을 잡곤 한다. 좋아하는 일을 찾아내고 기쁜 마음으로 그 일을 할 수 있는 것만큼 행복할 수 있을 까? 온화한 미소를 띤 김연희씨의 불상은 그의 넉넉한 마음이 담겨있다. “이렇게 제가 작업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아요. 아직 배워야 될게 너무 많지만, 바램이라면 제 공방을 열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어요.” 처음 주먹구구식으로 작업을 시작해 지금까지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만큼 꾸준히 작업했다. 진득한 열정으로 바램이 꿈에 머물지 않고 언젠가 현실이 될 것이라고 자신을 독려한다.
서희영기자 rikki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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