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대지의 숨결
글+사진 이혜경 _ 도예가
도자기를 전공으로 선택하면서 그것이 나의 삶에 진정한 지표가 되기까지 20여년의 시간이 흘렀다. 낯선 재료를 생에 처음 접하면서 느꼈던 기억은 풍부한 가소성에 대한 자유로움이었다. 처음 흙을 만지던 날 만들었던 것이 지금도 기억난다. 두텁게 코일로 말아 올린 필통형의 형태를 이리 저리 부풀려 보고 덧붙이고 신나게 뚫으면서 무엇인가를 가득 넣으려 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표현하고 싶은 무엇을, 알고 있는 그 무엇인가를 흙은 얼마든지 받아 주고 있었다.
흙과 친해지면서 흙에 넣어 볼 수 있는 온갖 방법을 익히고 그것을 영구히 고착화할 수 있는 불을 배워갔다. 배움의 시간은 너무나 즐겁고 황홀해서 언제나 시간이 모자라 마지막으로 학교를 나가고 이른 아침에 등교를 했다. 흙먼지와 노동으로 범벅이 돤 학창시절이 지나면서 서서히 흙과 불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생의 동반자가 되어 가고 있었다. 거칠어진 손과 허름한 옷차림으로 나선 세련된 도시가 가끔씩은 낯설어 지기도 했었다. 시절은 초고속 성장으로 세련되게 내닫고 있었지만 흙과 불이 삶의 동반자가 된 나는 자연과 역사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박물관의 낡은 유물들을 이리저리 보며 시간과 공간을 넘어 그들과 대화하고 싶었고 알고 싶었다. 생을 넘나들며 존재하는 무한의 아름다움을.
그러나 몇 십 년의 삶으로 몇 만 년의 지혜를 터득하겠다는 것은 될 일이 아니었다. 작업실을 시골로 옮기면서 앞 뒤 산의 흙과 대지를 감싸는 바람이 주는 언어를 듣기 시작했다. 평화였다. 자연이 가진 평화의 코드는 우리의 산천 곳곳에 널려 있었다. 여기저기 유물과 유적답사를 하며 내딛는 발걸음 마다 정겨운 평화가 가슴으로 밀려왔다. 땅이 그렇고 물이 그렇고 남겨진 유물들이 다 그랬다. ‘도대체 왜 이렇게 따뜻한거야’, ‘도대체 무엇이 이렇게 마음을 울리는 거야‘..... 닳고 닳아 문드러진 돌 하나에도 비바람에 삭아 부서져 내리는 기왓장 한 조각에도 평화의 코드는 담겨있었다. 형언할 수 없는 고요한 아름다움의 지혜를 주고 있었다.
흙작업을 계속하면서 익숙해지는 손놀림이 주는 즐거움이 터득되어 갔다. 잔잔한 기쁨이다. 만들어진 것만 봐도 만든 이의 생각과 성숙도가 어느정도 가늠되어 갔다. 그 가늠의 잣대가 깊어져서 넓고 깊은 역사속의 아름다움과 진실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지혜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 내가 그만한 심도 없이는 시공간을 넘어 존재해 온 진실을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경제가 고속 성장기의 정점에 이르자 우리의 삶은 질적인 변화를 찾기 시작했다.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진실에 대한 탐구가 시작되었다. 우리의 뿌리를 찾아 근원적인 아름다움을 모색하는 다양한 시도가 전개되기 시작하고 자연과 환경에 대한 관심은 높아져 갔다.
시골에서의 삶이 익숙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삶을 바라보는 방식이 달라져 갔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아름답고 서로가 공존하고 있었다. 흙과 물과 바람, 나무 그리고 거기에 닿는 인간의 손길은 아주 조심스럽게 그들을 헤아려야 했다. 더함도 모자람도 없이 그들의 자리를 보며 서로가 공존하는 팽팽한 자리를 찾아야했다. 작업은 그렇게 조심스럽게 이어졌다.
아름답다는 것과 추함의 경계는 여명 같아서 제대로 된 밝은 빛이 비춰지면 어둠의 자리가 있는 그대로 빛나는 자리가 된다. 만드는 자의 손길이 그 경계를 이루었던 것이지 존재는 다 아름다웠다.
집 주변이 재개발되면서 보상받고 떠나는 빈 집이 늘어났다. 사람들이 떠난 시골집은 어수선한과 애잔함이 함께 했다. 널부러진 살림살이를 받치고 있는 기둥과 대들보, 마루판, 낡은 대문, 무너져 내리는 구들장, 뒷곁에 모셔져 있는 항아리들… 필요없어서 버리고 간 것들이지만 나보다도 오랜 세월을 살아온 것들이 사라져 버리는 것은 안타까웠다. 힘이 닿는대로 집안에 들여 놓았다. 시커멓게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나무판이지만 물로 닦고 사포로 문지르니 붉은 속살이 고운결과 함께 드러났다. 이렇게 저렇게 집안에 옛것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골동품적으로 그렇게 가치가 있는 것들이 아니라 일상 잡기로 쓰던 잡물들이지만 그것들은 묘한 기쁨을 주기 시작했다. 되는 데로 잘라서 만든 것 같은 형태의 목물, 대충 유약을 휘두르고 쓱쓱 그린 옹기하며 긁히고 상처 난 마루판 쪽이지만 흙은 흙 데로 나무는 나무 데로 거침없이 만들어서 내놓는 것이 오랜 세월 자연과 더불어 익힌 지혜가 아니면 안 되는 평화스러움이었다. 그때부터 이것들이 작업과 삶의 지표를 찾는 지기가 되어 주었다.
움직이는 것만이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지혜와 정성 또한 큰 생명이었다. 우리의 것에는 자연을 터득하는 보이지 않는 지혜가 넘쳐나고 있었다. 그 지혜로움은 무작위란 근사한 틀 안에서 자연물들과 자유롭게 만나고 있었다. 그래서 평화였고 따뜻했다. 거슬릴 것이 없는데 어찌 따뜻하지 않으랴.
그 따스함을 가지고 전시에 나섰다. 흙을 구울 수 있는 재주를 가진 나와 옛 목물들을 데리고 나선 전시에 모두가 행복한 눈길을 보내준다. 나와 사람들을 미소 지으며 눈맞춤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를 보고 만들었으면 내가 지치면 그만이지만 결코 지치지 않는 자연을 보고 만들면 영원한 생명을 품을 수 있었다. 영원한 평화와 생명을 느끼는데 어찌 고운 눈길을 보내지 않겠는가. 우리의 가슴에는 해야 할 뜨거운 불들이 있다. 인류에게 던져줄 평화의 메시지를 품고 있다. 잔잔하게 갈고 닦으며 품어내야 할 뜨거운 바람이 도예를 전공한 나의 마음을 행복하게 한다.
작가약력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및 동산업미술대학원 졸업
개인전 6회
단체전 다수
환경도예가회, 현대공예창작회, 흙의 시나위 회원
남이섬 작가
solmolu@hanmi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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