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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가볍게 넘어선 一步
  • 편집부
  • 등록 2003-07-05 16:57:57
  • 수정 2016-04-16 00:3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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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숙의 ‘들꽃과 화분전’ 2003. 3. 21 ~4. 10 갤러리 몬티첼로 글/김진숙 미술사, 숙명여대 강사 전시장을 들어선 순간 맑은 빛이 가득 차고 생명의 기운이 생동하는 것을 느낀다. 우선 눈에 들어오는 것은 생생하게 빛을 발하는 들꽃들, 일상 속에서 눈에 띄지 않는 작은 존재들이 전시장의 주인공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있으니 마치 먼 곳에서 온 귀한 존재처럼 낯설고 또한 경이롭게 보여진다. 그것은 전위 예술가들의 주특기인 낯설게 하기(데페이즈망d?paysement) 기법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제자리에서 일탈하여 생소한 장소에 놓아 낯설게 함으로써 신선한 자극과 사고의 전환을 꾀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경숙의 낯설게 하기 방식은 그들과 다른 의도를 가진다. 전위 예술가들이 일상의 파격적인 사고의 전환과 충격 요법으로 사용했다면, 정경숙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심하고 소홀했던 부분을 섬세한 마음씨와 꼼꼼한 솜씨로 일구어 사랑스런 모습으로 드러내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낯설게 하기’ 보다는 ‘주인공으로 임하기’정도의 가치 전도적 의미가 있는 것이다. 노루귀와 깽깽이, 할미꽃, 으아리, 연잎 꿩의 다리, 동의나물, 새우난 등 여기에 이들이 어떻게 자리하게 되었는지 하는 의문과 함께 눈이 가는 것은 그들을 담고 있는 화분들이다. 1996년 들꽃과 화분전으로 제1회 개인전을 시작하면서 거의 매년 봄이면 개인전을 열었던 정경숙은 이번 몬티첼로에서 더욱 완숙한 모습으로 자리잡아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 촉의 단아한 모습의 들꽃에서부터 크고 작은 여러 종이 함께 어우러져 작은 동산을 이룬 모습까지 작은 동화이야기를 엮어 가듯이 정경숙의 세계는 정겨웁다. 이름모를 수많은 들꽃들을 가꾸면서 모두 제각기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각각의 생태리듬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나의 풀 한포기가 이럴진데 사람은 물론 이 세상 모든 존재의 생성과 소멸의 이치는 일률적 가치척도로 측정할 수 없는 각각 고유한 생태원리로서 실현된다는 것을 깨닫는 자연학습의 장이다. 작고 흔한 것이라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가꾸고 보살피는 모성의 사랑으로 들꽃 고유의 아름다운 빛과 자태는 빛이 난다. 정경숙 화분의 특징은 단아하고 소박한 모습과 투박하고 거친 듯한 다양한 재질감을 들 수 있다. 다양한 재질감과 색감을 내기 위해 짚이나 연탄재, 모래 또는 주변의 여러 가지 색깔의 흙과 재료들을 배합하여 자신만의 소지를 개발하고자 실험과 시도를 늦추지 않는다. 꼬리에 꼬리를 잇는 끝없는 이야기처럼 정경숙은 자신의 창작 세계에 몰두해 있다. 특별한 문양이나 색채, 인위적 조형의식이 느껴지지 않는 자연스러움과 꽃을 담았을 때 화분으로서 전체적인 어우러짐과 넉넉함을 충분히 고려하고 있는 작가의 섬세한 마음과 손길이 느껴진다. 도자기를 빚어 구워 내고, 흙을 담아 꽃을 심으면서 살아 숨쉬는 들꽃과 대화하며 사랑하고, 그들이 뿌리내려 살집을 마련해주는 풍성한 마음씨, 생존의 기본 조건을 터득해야만 가능한 작업들이다. 도예의 기능적, 실용적 의미나 예술적 의미 등을 되새김하는 것은 그의 관심 대상이 아니다. 특별한 전형이나 본보기 없이 자신의 세계를 이루어가는 그의 작업은 그 자체로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가볍게 넘어선 일보(一步)다. 작은 생명의 존재를 알뜰히 사랑하는 마음과 어엿한 이 땅의 주인공으로 살려내는 솜씨, 감사와 기쁨으로 충만한 그의 작업 과정은 이제 시간성의 개념까지 포함하면서 충분히 독자적 세계를 일궈가고 있음을 본다. 다년생 들꽃들이 서로 어우러져 조화로운 삶의 터를 이루어 가는 과정까지를 작업의 단계로 삼고자하는 정경숙은 자신의 세계를 차분히 넓혀가고 있다. 상생의 원리와 시공간의 조화는 해가 거듭될수록 더욱 풍성한 연륜과 여유를 담아낼 수 있을 것이다. 도예가 남편의 아내로서, 세 아이의 엄마로서, 그리고 굳이 예술가임을 자처하지 않는 자유로운 도예가 정경숙, 그가 지고 갈 삶의 무게가 만만치만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역으로, 살아가며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의 희노애락을 겪으며 풍성한 열매를 거둘 확률 또한 많다는 것 아닌가. 정경숙이 들꽃 가꾸기와 화분 만들기의 아름다운 조화와 비상을 꿈꾸듯, 그의 들꽃과 화분전을 보는 모든 이의 가슴에도 신선한 생명의 전율이 전도되기를 바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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