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 유화열 도예가
멕시코에서 식생활에 쓰이는 도자기 용기는 음식을 저장하고, 끓이고, 담아내는 등의 다양한 역할을 한다. 그러기 때문에 음식에 따라 그릇의 형태와 크기, 장식까지도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멕시코는 아주 오래 전부터 옥수수를 주식으로 한 음식 문화가 발전하였다. 멕시코를 포함한 중남미의 주식이 되는 작물은 옥수수와 감자인데 이중 옥수수는 중남미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는 식물이다. 안데스가 원산지인 옥수수는 메따떼(metate)란 맷돌로 갈아 반죽하여 또르띠야(tortilla)로 만들어 먹는 가장 대중적이고 보편적인 음식에서부터 각종 음료와 간식 등 수 많은 음식에 폭넓게 이용된다. 따라서 많은 수의 용기들이 이 옥수수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16세기, 에스빠냐 사람들의 멕시코 정복으로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식물들이 경작되었는데, 밀을 원료로 한 빵을 주식으로 하는 유럽 음식이 널리 퍼지게 되었고 이는 단순히 식생활의 변화만 주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도자기의 변화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멕시코 사회 전반에 파고들지는 못하였다. 일부 식민지 사회에 봉사하는 상류 원주민들을 빼고 대부분의 원주민들은 오늘날까지도 옥수수를 주식으로 한 식생활 문화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 또한 이러한 아메리카 대륙의 식생활이 이곳을 정복한 에스빠냐 사람들에게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게 되면서 상당수의 끄리올요(criollo, 멕시코에서 태어난 백인 계층)들도 옥수수를 일부 먹기 시작하게 된다. 결국 밀의 비싼 가격과 오랜 멕시코의 음식문화는 획기적인 변화 없이 오늘날까지도 많은 부분 이어 내려오고 있으며 이는 곧 실용기로서의 도자기의 변화에 한계를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옥수수를 이용한 음식은 따꼬, 따말, 뽀솔레 등이 있다. 옥수수 요리의 대표격인 따꼬(taco)는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양고기 등과 이것들의 내장을 요리하여 야채와 곁들여 위에서 설명한 옥수수 전병이라 할 수 있는 또르띠야에 싸서 쌈처럼 먹는 음식이다. 물론 이러한 육류들은 대부분 식민지 시대 이후에 들어온 것으로서 고대에는 콩, 호박, 차요떼, 아구아까떼, 고추 등 온갖 먹거리들이 여기에 대치되었다. 요리 방법에 따라 엔칠라다(enchilada), 께사디야(quesadilla), 부리또(burrito)가 만들어진다. 그 외에 주로 기념일에 먹는 따말은 옥수수 가루를 고기, 고추 등의 다양한 양념으로 반죽한 것을 옥수수 껍질에 잘 싼 다음에 찜통에 쪄서 만든다. 이외에도 옥수수를 이용하여 아똘레(atole)라는 음료를 만들고 옥수수, 고기, 야채를 함께 끓인 뽀솔레(posole)라는 국도 만든다.1)
대다수의 전통 요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오야(olla), 까수엘라(cazuela)가 필요하다. 이것은 저화도에서 일회로 소성하여 만든 다공질에 철성분이 많은 점토로 만들어진다. 이렇게 음식을 불 위에 올려두고 취사하는 용기와 민속주의 일종인 뿔께를 마시기 위한 술병과 술잔이 전통적인 형태로 만들어진다. 오랜 관습이란 쉽사리 없어지기 힘들다. 특히나 인간의 의식주 생활에서 빠져서 안되는 식문화에 관한 것은 그리 쉽게 뒤바뀌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멕시코에는 “까페 데 오야(cafe de olla)”라는 서민들이 즐겨 찾는 커피가 있다. 오야에 물이 끓으면 불을 약하게 낮추고 원두커피와 계피 가루를 함께 넣는다. 원두커피가루가 바닥에 다 가라앉고 커피향과 계피향이 어울려 독특한 향을 내면 많은 양의 설탕을 넣는다. 커피맛은 매우 달짝지근하면서 계피향이 살아있어 깔끔하기도 하다. 이 커피 맛을 내려면 반드시 오야에 끓여야 제격이고 하리또(jarrito)라는 커피잔에 마셔야 맛이 살아난다고들 한다.
음식 조리용 용기
오야(olla) - 바닥면이 평평하고 몸통이 넓적한 오야는 뚝배기와 비슷하게 일종의 솥과 냄비 역할을 한다. 입구가 안으로 오무라져 있고 목이 있고(또는 없는), 뚜껑이 있는(또는 없는) 모양이다. 오야의 높이는 대부분이 입구의 지름과 비슷하거나 두 배 정도로 큰 것도 있다. 씨앗, 고추 등의 음식을 보관하기도 하지만, 주로 불 위에 올려놓고 쏘빠(sopa)와 커피 같은 국물이 있는 음식과 음료를 끓이는데 쓰여진다. 오야에 끓여낸 커피를 가리켜 특별히 까페 데 오야(caf?de olla)라고 부른다. 오야의 안쪽면은 음식물이 밖으로 새지 않도록 투명 유약을 바르지만, 불길이 닿는 바깥면의 바닥과 기벽의 약 2/3 정도는 불길이 잘 스며들도록 유약을 바르지 않고 태토 그대로 둔다.
까수엘라(cazuela) - 입구가 밖으로 넓게 벌어진 대접 모양이고 바깥면의 양쪽에는 수평의 손잡이를 붙인다. 멕시코의 전통 음식으로 손꼽히는 몰레(mole)를 만들 때, 반드시 까수엘라에 끓여야 제 맛이 난다고 한다. 몰레를 만드는 요리 방법은 지방마다 약간씩 다르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고추, 참깨, 아몬드, 후추, 마늘, 양파, 토마토, 바나나 등을 갈아 익힌 다음에 칠면조나 닭고기에 몰레 소스를 곁들여 먹는다. 보통 한번 이 몰레를 만들 때는 많은 양을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어서 큰 까수엘라가 필요로 한다. 따라서 그 용도에 따라 까수엘라의 크기는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지름이 일 미터나 되는 것도 있다. 오야와 마찬가지로 안쪽면에는 투명 유약을 바르고 바깥면의 바닥 부분은 태토 그대로 둔다.
꼬말(comal) - 지름이 약 30~40㎝ 정도의 원반형으로 바닥이 평평하고 접시와 비슷한 모양이다. 주로 또르띠야를 만들거나 데우는데 이용이 되는데 손바닥 크기의 동그랗고 납작한 옥수수 반죽을 밀어 뜨겁게 달구어진 꼬말 위에 올려 구워낸다. 양쪽면이 다 익도록 뒤집어가며 구우면 또르띠야가 만들어지게 된다. 또르띠야를 만드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약간 삶아낸 옥수수를 바닥에 구멍이 뚫려 있는 그릇에 담아 물기를 뺀다. 옥수수의 알을 벗기고 메따떼(metate)라고 불리는 멧돌에 올려 기다란 돌 방망이(갈개)로 옥수수가 잘 으깨지도록 바닥면에 마찰시키며 갈아준다. 여기에 물을 넣고 잘 섞어 반죽한 뒤에 손바닥만한 만두피 모양을 만들어 뜨겁게 달구어진 꼬말에 굽는다. 꼬말은 오늘날의 후라이팬과 같은 용도를 갖는다. 최근에는 주로 인디오들만이 전통적인 꼬말을 사용하고 있고, 얇은 철판으로 만든 꼬말이 도자기 꼬말의 대용품으로 시골 곳곳에까지 보급되었다.
음식을 담는 용기
대체로 고기, 생선 요리같이 물기가 적은 음식은 쁠라또(plato, 접시)에 담고, 국물이 있는 스프 종류는 에스꾸디야(escudilla, 오목한 접시)에 담는다. 또한 음식이 담긴 접시 밑에는 더 넓고 평평한 접시를 한 장 더 받쳐두기도 한다.
쁠라또(plato) - 일반적으로 접시 형태를 총칭한다. 쁠라또의 바닥면은 평평하거나 오목하고 전 부분이 바닥면보다 약간 높은 편이다. 자주 사용되는 큰 쁠라또의 경우 지름이 25㎝에 이르는 것도 있지만 작은 쁠라또는 약 10㎝를 넘는 정도다. 지름은 높이의 약 5배 정도이고 굽의 모양은 삼족형, 사족형, 반지고리형이 있다. 대체로 고기, 생선요리와 같이 물기가 적은 음식을 담을 때 사용된다.
에스꾸디야(escudilla) - 쁠라또와 비슷하지만, 기벽이 좀 더 높아 반구형에 가깝다. 바닥면은 평평하거나 오목, 볼록하기도 하다. 굽의 모양은 삼족형, 사족형, 반지 고리형이 있다. 전의 지름과 높이가 비슷한 아주 오목한 에스꾸디야와 전의 지름이 높이보다 훨씬 큰 넓적한 에스꾸디야가 있다. 대체적으로 오목한 에스꾸디야의 지름은 약 12~23㎝ 정도이고 높이의 약 2배에서 5배 사이이다. 국물이 있는 스프 종류는 이와 같은 오목한 에스꾸디야에 담는다. 또한 음식이 담긴 에스꾸디야 밑에는 더 넓고 평평한 쁠라또를 깔아 국물이 식탁으로 넘치지 않도록 배려하기도 한다.
뽀솔레로(posolero) - 오목한 에스꾸디야에서 좀더 기벽이 높아진 모양을 하고 있다. 국그릇 또는 대접과 비슷한 모양이다. 바닥면은 일반적으로 평평하고 기벽면의 모양은 바닥으로부터 약 45도 각도로 뻗어 나온 것, 반구형으로 둥글게 올라온 형태 등 다양하다. 뽀솔레로는 뽀솔레를 담아내는 그릇이다. 뽀솔레는 굵은 옥수수알, 고기류를 낮은 불에서 오래도록 끓여낸 다음에 양파, 아구아까떼(아보카드), 향료, 쌀사를 섞어 먹는 국으로 해장국과 비슷한 맛이다. 일반적으로 뽀솔레를 주문할 때는 그릇의 크기를 가지고 주문한다. 큰 것은 입구가 20㎝, 작은 것은 14㎝ 정도이다. 이것은 뽀솔레를 담기 위한 그릇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그 외에 국물이 있는 해물요리 등에도 사용된다.
음료를 담는 용기
바소(vaso) - 원통형의 바소는 컵 모양과 비슷하다. 전의 지름은 약 6~12㎝이고 높이는 지름과 비슷하거나, 약 1.5배정도 크다. 기벽은 직각으로 세워져있고, 전 부분이 약간 벌어졌고, 바소 안쪽의 바닥면은 평평하고 굽의 모양은 반지 고리 모양이거나 세 개의 높은 다리를 만들어 투각, 음각 기법으로 화려하게 장식하기도 했다. 고대에 만들어진 바소는 ‘납골함’의 용도로 쓰여져 장례용 용기로 알려져 있는데 이때 만들어진 것들은 기벽의 바깥 부분에 조각 기법을 사용해 매우 도드라지게 기하학과 동식물 문양으로 장식하였다.
따사(taza) - 바소에 손잡이를 붙이면 ‘따사’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손잡이가 없는 경우도 있다. 이렇듯 바소와 따사의 형태를 명확하게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오늘날 멕시코인들은 바소는 따사보다 큰 것으로 차보다는 음료를 마시기에 적합한 것, 그리고 역사적으로 유서 깊은 용기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이에 따사는 일반적으로 바소에 비해 작은 편이고 아똘레, 커피, 초코렛, 뿔께, 물과 같은 음료를 따라 마실 때 쓰이는 찻잔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입구는 약간 벌어져 있고 따사 안쪽의 바닥면은 둥글고 굽의 모양은 반지 고리 모양이다.
꼬빠(copa) - 높은 굽으로 받치고 있는 일종의 컵이다. 윗부분은 구(球)형, 또는 바소, 접시 모양으로 매우 다양한 편이고 아랫부분은 원통형의 굽이 붙어있다. 각각의 높이는 비슷한 편이고, 중간 부분은 막혀 있어 실제로 음료가 담아지는 면은 윗부분이다. 바소, 따사와 다르게 높은 굽은 갖고 있는 꼬빠는 아주 특별한 날에 의식용으로 사용되는 음료 용기이다.
하로(jarro) - 구형의 몸통에 넓고 긴 목이 연결되어 있고 목 부분에는 둥근 손잡이가 붙어있다. 전 부분의 한쪽 면에는 음료가 잘 따라지도록 작은 삼각형의 주둥이가 나 있다. 음료를 담아 바소나 따사에 따를 때 사용하는 하로는 일종의 주전자와 비슷하지만, 뚜껑은 만들지 않는다. 손잡이는 손가락이 다 들어갈 수 있도록 크고 편안하게 만들고 반타원형, 수직형 등 매우 다양하다. 생맥주의 잔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물, 뿔께, 쥬스, 차와 같은 음료를 담는 하로는 축제, 각종의 모임이 있을 때 식탁의 중앙에 위치한다.
보떼야(botella) - 구형의 몸통에 길고 가는 목이 붙어 있고, 손잡이가 있거나 또는 없다. 하로는 작은 주둥이가 입구에 있지만, 병은 몸통에 붙어 있는 기다랗고 가는 관에서 음료를 따를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그러나 모든 병에 주둥이가 있지는 않아 없는 경우도 있다. 또한 하로와 다르게 가늘고 기다란 목 부분이 특징이고 입구의 안쪽 지름은 약 3㎝ 정도이다.
1) 임상래, 김우성, 박종탁 공저, 중남미사회와 문화, 부산외국어대학교출판부, 부산, 1998, pp. 208-211.
위 식탁 위에 멕시코 식기가 세팅된 모습이다
아래 멕시코씨티 주변 도시에서 도자기 축제가 열렸을때 전통 그릇을 파는 모습이다. 위에서부터 다양한 모양의 물항아리가 보이고 그 아래에는 손잡이가 달린 오야(olla)와 사람 얼굴이 조각된 물항아리가 보이고, 그 아래에는 다양한 크기의 넓적한 오야(olla)가 보인다
위 시골 장터에서 도자기 그릇을 파는 모습이다. 왼쪽부터 넓적한 까만 그릇은 몰레와 같은 음식을 끓이는 까수엘라, 옆으로 물을 담아내는 물항아리, 물컵, 까수엘라가 보인다
아래 몰레(mole)를 뿌린 닭요리. 멕시코 전통음식을 대표하는 몰레(사진에 보이는 밤색 쏘스)요리이다. 결혼식, 생일 또는 기념일에 몰레요리를 먹는데, 반드시 전통 도자기 용기에 담아낸다
위 물항아리. 물항아리의 몸통 중앙 아래에 가로로 툭 튀어나온 줄은 제작과정에서 생겨난 것이다. 바닥에서부터 줄이 보이는데까지는 반구형의 석고 또는 점토틀에 흙을 넣어 찍은 다음에 코일링으로 쌓아 형태를 완성했다
아래 물항아리. 멕시코의 어느 지역을 가도 일년내내 마시는 물은 귀하다. 마당 한쪽 귀퉁이에 커다란 물독에 식수를 보관하고 있다
필자소개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도예과 졸업
멕시코국립대학 조형미술대학원 조각과 졸업
멕시코국립예술원 에스꾸엘라 데 아르떼사니아도예과 교수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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