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움직임, 생명력 - 신용호의 안과 밖
글 박경순 _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도자공예학과 교수
빛과 움직임이라는 주제로 오래전부터 작업을 해온 신용호는 이번 전시에서 작가의 관심사인 빛과 움직임이라는 지금까지의 전시주제와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살아있다는-생명력에 대한 인식이 추가되었다는 점에서 작가의 작업에 대한 관점이 변화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조명기구와 모터를 이용한, 단순한 물리적 현상에 의한 변화가 그동안 그의 작업에 대한 주된 관심사였다면, 이제는 그의 손을 거쳐 완성된 형상들과 그 형상들의 움직임 속에서 또 그들과 연결된 주변 공간 안에서 존재하는 새로운 생명력을 느끼게 된 것이다. 이것은 작가의 성숙된 사고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존재에 대한 탐구를 하게 되었으며 그 탐구의 결과가 생명력에 대한 표현으로 연결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지구 혹은 대지를 연상케하는 백색의 도자기물과 그 위에 꽂혀 있는 나뭇가지’가 단위 개체가 되어 질서정연하게 설치되어 있는 작품에서는 우선 구와 선이라는 기본 도형의 반복에서 오는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 과거의 기억이 전사되어 있는 육면체들의 집합 또한 시각적으로는 다른 작품들과 대동소이한 느낌을 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외형적 아름다움 보다는 여러 형상들이 모여 이루어내는 내면적 의미에 작가는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는 듯하다. 모터와 조명에 의해 형성된 움직이는 나뭇가지들의 그림자는 실제의 나뭇가지들과 어우러져 청마 유치환의 <깃발>처럼 소리 없는 아우성을 그리고 있는 듯하며, 투명 아크릴로 덮인 반구형의 조형물과 그 안에 놓인 전구, 이들을 연결하는 전선들은 마치 어머니의 자궁 안에서 조용히 자라고 있는 태아와 자양분의 공급통로인 탯줄을 연상시킨다. 또한 은은하게 비치는 전구의 불빛들은 이러한 생명의 기운들을 축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모두 강하지는 않으나 조용하고 묵직하게 꿈틀대고 있는 생명력을 느끼게 하며, 이 생명력은 어쩌면 사고의 성숙과 작업에 대한 열정의 증대로 무언가 변화를 추구하고자 하는 작가 자신의 자화상인지도 모른다.
“그동안 관심을 가진 빛과 움직임에 대한 작업은, 제작을 하면서 형태적인 흥미 이외에 또 다른 상징적인 부분을 느끼게 하였는데, 그것은 살아있다는 생명력에 대한 것이다.… 또한 움직임과 빛의 만남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그림자의 움직임은 새로운 공간영역을 보여줌으로써 작업의 영역을 확장시키며, 이것은 의도되지 않은 상황의 연출로써 시각적인 착시와 함께 보는 이를 긴장시킨다. 또한 이전의 것들이 단순한 구조 형태의 빛과 움직임에 의한 표현이었다면 이번에는 그러한 빛과 움직임을 생명에 대한 상징적인 주제로 끌어 들이려 하였다.”
작가의 글에서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새로운 시각으로 사물을 보게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성숙된 작가의 내면세계를 그려낼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이해이며, 그 세상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자신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기도 하다. 활기 있고 생명력이 넘쳐흐르는 기氣에 대한 인식이 앞으로 그의 작업을 더욱 풍요롭게 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중요한 것은 넘치는 활기를 적절히 조절하여 넘치거나 모자람이 없도록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잃지 않는 것이다. 늘 끊임없는 사색과 함께 작업에 몰입하는 작가 신용호. 그의 안과 밖에 빛이 있고 움직임이 있고 거기에 또 생명이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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