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진난만의 무심결이 빚어낸 매혹의 세계
글 조명제 _ 시인, 도자기 애호가
젊은 도예가 김대웅전을 보고 난 첫 느낌은 한마디로 ‘맹랑하다’는 것이다. 얼마전 같은 장소에서 열렸던 이태호전을 보았을 때의 ‘기특하다!’는 인상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알다시피 이들은 무유번조의 장작가마 작업을 이어가는 대표적인 젊은 도예가들이다. 양승호, 박순관, 서영기(일부) 그리고 이태호의 뒤를 잇는 김대웅은 무유번조 작업의 한 계보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특성은 그들의 얼굴 생김만큼이나 서로 다르다. 장르에 따라서는 근친성이 발견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위상적 연관성 속에서 이번 김대웅전의 특성과 의의를 생각해 보게 된다.
큼직한 합盒과 대발, 항아리와 항아리 형태의 합, 찻사발과 다관 등 다기세트, 접시와 잔 등을 골고루 선보인 이번 전시는 신선한 충격을 던져 준다. 우선 작품의 질감은 파도가 몰아쳤다가 쓸려나간 갯흙바닥 위에 생겨난 부정형의 물결무늬나, 홍수 뒤에 강가 퇴적토에 그려진 역동적인 물자국 같기도 하고, 옛 어머니들이 치대다가 던져 둔 서답(빨래)의 주름결 같기도 하다. 아담한 체구에 아직도 이웃집 장난끼 가득한 개구쟁이 같은 얼굴을 가진 이 젊은 작가의 어디에서 이런 시원스럽고 대범한 손큰 자국 기법이 흘러나왔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거기에 연기와 불티까지도 버리지 않는 무유번조의 그슬림 기법을 적절히 활용하여 자연스럽고도 당당한, 그리고 원시적 건강성을 살려 놓고 있다.
이런 기법에 의한 찻사발과 주물럭 기법의 다관도 선보여 눈길을 끈다. 투박하고 둔탁한 느낌의 사발은 대범한 손질 자국에 오돌도돌한 태토의 질감이 잘 결정結晶된 듯한 표면 형태를 보인다. 소금끼의 붉은 색과 불티가 녹아 어울린 이 사발의 구연부는 먼 산맥의 흐름 같기도 하고 출렁이는 파도의 모양새 같기도 하다. 묵직한 것이 흠일 수도 있겠지만, 지나치게 날렵한 전통적 사발 기법에 대한 도발적 상상력의 결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낮은 세 나눔굽이 특징인 또 다른 유형의 찻사발에서는 바깥울에 음각의 가는 무늬가 눈길을 끄는데, 성형 중 손톱으로 그어댄 것이라고 한다. 이 역시 문명의 이기를 최대한 배제하자는 자연주의 정신에서 나온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압축되는 인상은 자연스러움과 천연덕스러운 힘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자연스러운 미美라는 점에서 이 젊은 작가는, 무기교의 기교의 경지에 이른, 노련한 도공이 실로 무심의 상태에서 손길대로 빚어내는 이법을 일찌감치 터득한 성 싶다. 다만 거기에 천진한 듯 무모한 듯 천연덕스러운 힘이 특질을 이룬다. 마치 흙을 밀가루덩이 반죽하듯 주무르고 휘감아 빚은 작품들의 질감은 어린아이의 악력握力이 천진의 무심결로 주물러 낸 역동적인 힘을 발한다.
끝으로 날카로운 중진 시인 백이운씨가 김대웅전을 본 강렬한 인상에 이끌려 그날로 써 낸 ‘결’이라는 제목의 시조를 덧붙인다.
자그마한 불수佛手로 무슨 세상 빚으시나
한 송이 연꽃을 밟고 두 손으로 찻잔 받든
마음에 유리광溜璃光세계를 여럿 지닌 사내여.
한 호흡 멈추고 보면 흠결도 보석이라
금 간 찻잔의 떨리는 결을 따라
지금 막 관욕灌浴을 마친 흙의 정령 나서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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