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백자의 미감 계승한 현대백자 작업
군더더기 없는 은유적 화려함 지향
3년전 인사동 공화랑에서 이목을 끄는 도예 전시가 열렸었다. 명지전문대학 도자제품연구회의 으로, 백자제품을 연구하는 도자제품연구회에서 우리 옛 백자를 각기 한가지씩 선정해 그 모방작과 함께 백자기들을 선보였던 전시였다.
당시에 「청화백자격자문연적」을 카피하고 백자탕기세트를 선보였던 유세림(35)도예가를 만났다. 학교연구소에서 작업하던 유세림씨는 지난 4월 서울 종로구 통의동 한옥촌에 자신의 첫 작업실을 열었다.
보슬비가 내려 더 운치 있는 서울 한옥촌의 좁다란 골목을 지나 나무문을 열고 들어가면 정갈하고 아담한 그의 작업공간이 나온다. 자신의 작업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안 낯선 대면의 어색함은 이내 사그라졌다. 작업 중인 것들도 완성된 것들도 모두 백자들로 섬세함과 간결함이 돋보이는 식기들이다. 전시장에서 몇 번인가 마주한 적이 있는 그의 그릇들은 불쑥 들여다봐도 세련된 모양새를 과시하듯 당당하다.
나무기둥과 서까래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한옥 마루 위에 자리 잡은 작업 공간에는 두 대의 전기물레가 나란히 마주보고 있다. 투명한 유리로 천장을 막아 하늘이 올려다 보이는 마당은 시유하고 번조할 수 있는 곳으로 사용한다. 주택가에 자리한 작업장이다 보니 가스가마를 설치하지 못해, 전기환원가마를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곳으로 이사와서 제일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가스가마를 못 쓰고 있다는 것이다. 이웃들을 설득해 가스가마를 꼭 설치하고 싶다고 한다.
좋은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역사 인문 철학에 대한 공부도 병행
유세림은 명지전문대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조교로 재직하며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다. 학교일로 면식이 있던 도예과 정연택 교수의 권유로 도자기를 시작하게 됐다. 처음에는 그저 막연하게 흙을 만지며 일종의 위안을 얻고자 했는데, 그렇게 우연히 손댄 작업이 삶의 전화점이 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까지 8년 동안 명지전문대 도자제품디자인연구소에서 작업하다가 올 4월에 자신의 공간을 마련하고 독립했다. 그가 동참해온 도자제품연구소에서는 기술적인 부분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2년제 대학의 커리큘럼을 보완해 도예가로서의 역사, 인문, 철학적인 부분을 함께 연구하면서 궁극적으로는 현대생활에 적합한 백자식기를 개발한다. “백자식기에 담긴 예술성은 직접적인 표현이나 설명이 아니라 간결함에서 내재된 감성이라고 여겨집니다.” 기법적인 공부뿐 아니라 습득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서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작업과 연구를 병행할 계획이다.
2000년도부터 인사동 공화랑에서 정기전을 열면서 활발히 활동하던 도예연구소 작가들은 학교 측의 지원으로 올초 인사동 쌈지길에 대학사업체인 ‘1260’(1260은 백자의 소결온도를 의미한다)샵을 열었다. 유세림은 이 ‘1260’샵과 주문판매 전시를 통해 작품을 판매하고 있다.
옛 백자 통해 자신의 백자 찾아가는 자아성찰
작업의 모토는 조선백자의 단아함과 정갈함 그리고 그 속에 담긴 푸근함을 현대에 적합한 생활기로 만드는 것이다. 그가 추구하는 백자의 조형은 군더더기가 삭제된 은유적 화려함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자의 절제된 감성과 정화된 미감을 요한다.
옛 도자기를 카피하면서 실행착오를 겪으며 전통문화의 올바른 계승과 자아성찰의 계기로 삼기도 했다. 그의 단아한 백자에서는 작업과정의 까다로움이 엿보인다. 태토의 철저한 관리는 물론이고 점성이 약한 밀양도토로 성형하는 것 또한 기량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눈에 들어오는 흰 백자의 조형 비례와 균형감은 한치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다. 유세림이 백자를 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주로 한식기와 주기 다기 제기 등을 위주로 작업하며 잔잔하게 양각된 목단문이나 잔꽃무늬가 완성도를 더한다.
치밀하고 꼼꼼한 장점이 독이 되지 않도록
유세림의 백자는 실용적이고 디자인적인 요소가 강하다. 그의 은사인 정연택 교수는 “유세림의 작업은 대단히 치밀하고 꼼꼼하다. 그런 장점을 잘 발휘한 작업들은 화려하고 유려한선을 가진 세련된 느낌으로 다가오지만 때로 그런 요소들이 독이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되기도 한다.”고 말한다.
그가 작가로서 갖게 되는 어려움은 동시대의 젊은 작가가 갖고 있는 어려움들과 다르지 않다. 공산품과 차별된 고부가가치의 도자기식기를 만들고자하는 그의 뜻이 장기간의 경기침체와 도예문화에 대한 인식부족으로 점철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시대의 미감을 견인할 수 있는 생활기를 만드는 것이 작가 자신의 꾸준한 작업으로 성공하길 기대해본다.
서희영기자 rikki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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