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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향 가득한 풍경을 담은 도자
  • 편집부
  • 등록 2006-03-13 15: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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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향 가득한 풍경을 담은 도자

글+사진 김귀화 _ 도예가, 영암도기문화센터 큐레이터

산은 인간의식 표현의 조형언어이며 조형 활동을 위한 모티브로서 다양한 매체의 예술작품에서 그 유형을 찾아볼 수 있다. 고구려의 고분벽화 수렵도의 산은 물결치는 듯한 흐름의 활달한 이미지로 표현되어 있으며 백제의 산을 표현한 산수문전은 기하학적인 원리에 입각한 온화한 분위기로 중첩되는 봉우리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또한 한국화에 나타난 산은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을 품고 있거나 때로는 관조적인 삶을 조명하기 위한 은유로서 등장하기도 한다. 이처럼 산은 형태나 표현방법은 다르지만 인류에게 두려움이나 정복의 대상이 되는 등 인간의 삶과 연관성을 가진채 자연의 대표 이미지로 나타나고 있다.  
내 작품에 나타난 산은 두려움이나 정복의 대상이 아닌 온유와 넉넉함을 가진 이미지이다. 조용하고 세상의 흔들림에 동요하지 않는 느긋함과 시끄러운 인간의 삶을 반성하고 순수함을 바탕으로 한 인간의 근원을 찾고자 하는 의지를 「지리산의 아침」이라는 작품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였다.
 
“어둠이 점점 물러가고 빛이 세상을 비출 즈음 눈앞에 펼쳐진 구름처럼 휘감긴 길과 다가가도 그만큼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하늘이 보인다. 그 사이에 자리 잡은 지리산은 내 고향이 그 곳임을 알려준다.”  

유년시절의 아침은 묵향과 함께 시작되었다. 이른 잠에서 깨어나 그림을 그리듯 글씨를 그렸다. 하지만 먹색의 단조로움에 금방 싫증을 느끼고 부족한 잠에 대한 미련이 더 컸던 때였다. 어느 날 그동안 내가 보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곳에 지리산이 있었다.
심장이 뛰는 듯한 느낌, 섬세한 필력으로 그려진 눈 오는 풍경의 동양화를 보는 듯한 감동은 지리산이 살아있는 산이며 나와 감정이 통하는 하나의 대상이 되게 한다.
지리산은 맑은 계곡의 물, 시원한 바람, 따뜻한 터전을 기꺼이 내주었고 언제라도 지친마음을 감싸주는 넓은 가슴을 가졌다. 지리산의 근원은 포장되지 않은 순수함을 지닌 자연의 근원이며 우리네 삶의 단편과 관련 없는 독립적인 존재이다. 지리산에 대한 감흥은 우리의 의식이 원초적인 지리산의 외형에 각자의 인생을 반영하는 낱낱의 이미지를 덧씌운 것일 뿐이리라. 이른 아침 맑고 차디찬 공기를 크게 들이켜 보자. 머릿속에 쌓인 먼지가 씻겨 내려가는 듯한 느낌을 느끼게 될 터이니. 지리산의 정갈한 이미지는 우리가 원하는 마음의 평안을 가져다 준다.
지리산은 내 고향의 이미지이며 어릴 때 팔이 아프도록 갈던 묵향과 같은 은은한 향기를 가진 존재로서 언제라도 동영상처럼 떠올릴 수 있는 익숙한 존재이다. 무수히 많은 이야기와 감정을 표현하는 지리산은 내 작품의 가장 중요한 소재이다. 지리산 이미지는 자연스러움이 중요해 색상의 농도 조절에 따른 그라데이션 효과를 이용해 중첩된 느낌으로 표현한다. 백색의 자기소지는 해가 떠오르기 이전의 깊이를 알 수 없는 고즈넉한 하늘의 느낌을 표현하기에 충분하다. 또한 지리산 각각의 봉우리가 중첩되는 모양은 공기원근법에 의한 서양의 회화나 한국화에 나타난 먹의 농담처럼 가까운 곳은 진한 색상의 점토로, 먼 곳은 엷은 색상의 점토 조합에 의해 나타난다.
농도변화에 의한 색상의 점이는 여러 가지 색상의 충돌이나 부조화를 거부한다. 내 작품의 이미지는 산수화의 종이와 먹에 의한 효과를 재료적 특성과 표현방법이 다른 특징을 가진 점토와 도자기를 매개체로 한 한국적인 이미지의 표현이며, 현대도예 내에서의 파격적인 색상의 차용이나 이국적인 모티브에 의한 괴리감과는 다른 한국인의 감성에 어울릴 만한 이미지라고 여겨진다.
작품제작은 석고 캐스팅기법을 활용하며 자연물의 질감 도입이나 생활용기의 형태로서 석고형틀 내에 지리산의 형상을 그려 넣는 과정을 거쳐 완성된다. 문양의 특성은 청자나 분청사기에서 활용하는 상감기법과 유사한 것으로서 도입 및 적용과정은 다르지만 동일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상감기법의 또다른 응용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조형은 절제된 단순함과 자연 질감의 병행으로 지리산의 다양한 이야기를 시각적인 언어로 기록하고 그 속에 내재된 숨겨진 것들에 대하여 사유하는 동기를 부여한다. 조형물 또는 생활용기 등 조형성은 다를지라도 지리산은 그 속에 공통적으로 내재되어 있다. 그릇에 그려진 지리산은 자연의 모습을 담은 식기라는 차원에서 산업도자 분야에서 행해지는 전사기법에 의한 대량생산의 속성과 달리 문양의 다양한 전환 및 전개를 통해 변화를 적용하며 핸드페인팅기법의 들뜬 이미지와는 다른 깊이를 느끼게 한다.
지리산은 나와 오랜 시간을 함께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내 작품은 조용한 지리산의 일면 이외에도 산새의 지저귐이나 계절의 변화를 담고자 한다.  지리산을 그리는 작업은 인내력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 지리산을 그리는 동안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는 동시에 고민을 떨쳐내는 시간이 되며 세상과 잠시나마 떨어져서 관조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작업을 하면서 일어나는 마음속의 동요는 고개를 들어 지리산을 한번 바라보면서 그리고 내가 그려 놓은 지리산을 또 바라보면서 그냥 삭힌다.


1 「지리산의 아침」
   60×12×16cm
2 「지리산의 아침」
   20×7×20cm
3 「지리산의 아침」
   7×7×9.5cm
4 「지리산의 아침」
   30×30×10cm

작가약력
2005 동양도자전
2005 광주디자인비엔날레
2005 대한민국산업디자인전람회 한국무역협회장상
한국도자학회, 광주·전남디자이너협회, 광주·전남도예가협회 회원
현, 영암도기문화센터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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