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작가마의 재조명
우리전통가마 - 제주 석요 石窯
글 강창언 _ 제주전통도예원 원장
사진 김호천 _ 연합뉴스 사진기자
사라져 버린 대규모의 가마들
불과 50년 전, 한라산 서부의 자연 마을에서는 60여기에 이르는 단벌소성 가마들이 대대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가마라는 시설물, 엄청난 땔감의 소모는 주변의 잡목지대를 사라지게 하고, 점토를 캐내는 광범위한 지대는 모두 논으로 조성되었다. 수 백호에 이르는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요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그들이 만들어낸 도기들은 제주 전역에 보급되었다. 그러나 그 일은 그들만의 일이었다. 1960년대 맥이 끊길 때까지 기록이 전무하다. 모두 기이한 일들이라 생각한다. 본 글에서는 그들이 사용했던 석요를 통해 우리의 도기 문화를 말하려 한다.
세계 요업사에도 없는 석요
제주의 석요는 ‘굴’이라 한다. 그릇에 유약을 칠하지 않고 유약의 효과를 얻어내는 ‘노랑굴’, 그릇에 연기를 먹여 회색조를 띠게하는 ‘검은굴’, 기와를 구워내던 ‘기왓굴’ 세 종류가 있다. 모두 반원형을 이루는 통요桶窯이다. 경사도가 대략 15~20°를 이루는 등요登窯다. 도공이 직접 연료를 투입하는 불연속가마이다. 가마의 전체가 돌로 만들어진 석요石窯이다. 일반적인 벽돌 가마土窯와는 요재窯材가 다르다. 제주도는 화산섬이다. 화강암과 같은 조밀한 성질의 암석은 드물다. 구멍이 숭숭한 현무암이 섬 전체를 덮고 있다. 그 돌은 강한 열에도 파손되지 않고 잘 견딘다. 내화재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석요 유적은 1200년대부터 나타난다. 1488년의 최부崔溥의 탐라시 삼십오절구 가운데 28절구에는 허벅을 진 아낙들이 표현된다.1) 1600년대에는 도토를 이용해 학사를 신축하는 얘기가 등장한다.2) 1700년대에는 이미 옹점이라는 전문적인 판매점이 있었다.3) 유적과 문헌들이 제주 석요의 장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음을 암시한다.
분업화된 기능들과 석요 축조공
대장은 요업과 관련된 전체적인 기능을 갖고 있는 ‘굴대장’, 그릇의 성형을 전문으로 하는 ‘대장’, 소성을 하는 ‘불대장’, 땔감과 점토를 다루는 ‘건애꾼’으로 나뉜다. ‘굴대장’을 제외하고 나머지 기능인들은 분업이 철저하여 서로의 기술을 공유하는 일은 드물다. ‘건애꾼’이 점토와 땔감을 준비하면 ‘대장’이 성형을 한다. 그 다음에 ‘불대장’이 소성을 한다. 이런 순으로 반복적으로 일이 진행되기 때문에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이뤄질 수는 없다.
석요의 축조는 ‘굴대장’의 몫이다. 가마 안에 재임되는 기물을 어떤 효과로 완성시킬 것인가. 수량은 어떻고 어떤 방식을 취하여 재임을 할 것인가. 땔감은 어떤 종류를 가지고 가마를 구워낼 것인가 등이 판단되어야 한다. 지리적으로 어떤 바람이 통과 하는가 등의 기후 변화도 중요하다. 지반은 배수·침몰·변화 등이 없어야 하며, 주변 도로와 판매까지 감안하여 터를 잡는다. 결국은 양질의 도기 생산에 맞춰진다. 도기를 생산하는데 있어서 기술, 점토, 땔감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고도의 기술이 수반된다면 땔감과 점토는 장거리 이동도 불사한다. 오늘날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작업을 해야 하는지를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석요를 축조하는 일에는 많은 인력이 동원되며 그에 따른 비용이 든다. 그런 부담을 줄이기 위해 보통 5~9명 정도가 ‘제계 ; 契’를 구성하여 진행한다.
석요는 제주 현무암 가운데서도 구멍이 숭숭하고 검은 색을 띠고 있는 속칭, ‘해량돌’이라고 불려지는 돌을 추려서 쓴다. 석요의 규모는 기물에 따라 다르다. 맞춤형 가마인 셈이다. ‘굴대장’은 석요를 축조하는 일 외에도 가마의 성능을 입증하기 위해 ‘첫굴(한 가마 불량의 도기)’을 드린다. 기물이 잘못되는 날에는 주인은 큰 손해를 본다. “두 가마를 실패하면 부자도 못 일어난다.”라는 속설은 전통가마의 크기와 작업량을 추측하게 한다. 요즘과는 달리 대규모의 가마들이라서 득실이 크다. 가마의 성능은 첫 번째 소성시에 이뤄진다. 기물이 제대로 나오면 명성을 얻고 부실하면 퇴출된다. 그런 것을 감안하여 불을 지피는 ‘굴대장’의 심정은 무아無我일 것이다.
구조속의 신비로움
1)노랑굴구조를 말한다. 바람 많은 제주도에서 가마에 불을 놓는 것은 힘들다. 가마 앞쪽에 바람과 눈비를 막기 위한 ‘부장쟁이’란 집이 있다. 이는 가마에 불이 지펴지면 도공들이 숙식을 하며 장시간을 지내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아굴이는 ‘口’형이다. 역시 돌로 만들어 진다.
세부 구조이다. 노랑굴을 말한다. 불소성실은 ‘부장’이라고 한다. 길이 2~3m 정도로 불의 운동장인 셈이다. ‘부장’은 계란형으로 만들어진다. 불을 고르고 양을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부장’과 ‘굴안’으로 이어지는 곳에 ‘석’이라고 하는 기둥이 있다. 기둥 양쪽으로 ‘불고망’이라고 하는 불구멍 2개가 있다. 결국, ‘석’이라고 하는 기둥은 강한 불을 2개로 가르는 기능이 있는 셈이다. 양쪽의 ‘불고망’ 가운데 출입구가 있는 쪽의 것이 크다. 출입구 역시 돌로 쌓아 막는데 안쪽의 불규칙한 면으로 인한 불길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함이다. ‘굴안’은 기물이 구워지는 소성실을 말한다. ‘굴안’의 길이는 15~20m이다. 단면 모양이 ‘∩’ 형태를 이루고 있다. 둥그스름한 천장과 이어지는 모퉁이에는 ‘독새기고망’이라는 잿불구멍이 50~60㎝ 간격으로 25개 내외가 있다. ‘굴안’ 뒤쪽에는 연기 구멍인 ‘뒷고망’ 4개가 있다. 가운데 2개 보다 양쪽 것이 약간 크다. 아궁이 1개 +살창주 역할을 하는 ‘불고망’ 2개 + 배연구인 ‘뒷고망’ 4개의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일반적으로 굴뚝이나 배연 시설을 하는 것과는 다르다.
2)검은굴과 기왓굴
이 석요들은 모두 파이프처럼 뚫어져 있다. 아궁이인 ‘앞고망’에서 배연구와 출입구 역할을 하는 ‘뒤고망’까지 어떤 시설물도 없다. 불소성실과 소성실 구분은 기물의 종류와 성격에 따라 재임을 하며 조절된다. 당연히 불의 크기가 맞춰지는 셈이다. 불의 통로는 재임으로 맞춘다. 모든 기물은 뒤쪽에서 입출된다. ‘뒷고망’을 돌로 막으면서 배연구도 적당한 크기로 맞춘다.
이 석요들은 ‘노랑굴’과는 달리 환원소성還元燒成한다. 불의 온도가 섭씨 700~900℃에 이르면 살아 있는 소나무 가지를 잘라 묶은 ‘생솔’을 넣어 ‘앞고망’, ‘뒷고망’을 막는다. 기물에 연기를 침투시켜 숯항아리를 만드는 것이다. 이 방법은 가야, 신라 등지에서 이른바, ‘도질토기’에서 흔히 쓰던 것이다. 제주에서는 ‘검은그릇’이라 통칭한다. 주로 곡물과 물을 보관하는 항아리류와 시루와 향로·향합 등 제사용 그릇들이 생산되었다.
불속의 철학
가마에 재임할 때는 ‘굴안’에만 도기 500~800개가 재임된다. ‘부장’에 2~6개의 화로火爐 같은 기물을 넣는다. 불을 가늠하는 용도이다. 불은 4가지로 구분된다. ‘식은불’, ‘족은불’, 중불, 큰불이다. 소성시간은 2박 3일 가량이다. ‘굴안’에 기물들은 뚜껑을 덮어 재임되는 형식을 취한다. 수분과 공기 소통을 하기 위해 아가리를 열어 두는 형식과는 다르다.
소성은 장작을 이용하지 않는다. 살아있는 나뭇가지를 잘라서 묶고 건조된 ‘섬피’를 쓴다. 점화되면 폭발적으로 타 들어가며 불태풍을 이룬다. 소성실 상층부의 온도가 섭씨 1200℃ 내외에 이르면 ‘굴안’ 양쪽으로 뚫어져 있는 잿불구멍인 ‘독새기고망’을 열고 잿불질을 한다. 양질의 땟깔을 얻어내기 위한 것이다. 가끔 물리적인 조건이 맞지 않아 온도 조절이 실패하면 많은 불량이 나오거나 ‘굴안’은 용암처럼 녹아 흐른다. 도공들은 잘못되는 과정을 알면서도 불을 계속 지핀다. 10개월의 건조 기간을 거치는 그릇들을 한점이라도 더 건지기 위한 것이다. 기물에 유약을 시유하지 않기 때문에 불의 힘으로 유약의 효과를 얻어야 한다. 이른바, 자연유自然釉이다. ‘고냉이찰흑’4)이라고 불리우는 제주산 점토의 장석 등의 물질과 재灰가 혼합되어 유약의 효과가 나는 셈이다. 유약을 녹이는 일반적인 도기와는 분명히 구분되는 점이다.
지금의 상황에서
그 누가 제주전통 도기에 관한 한 줄의 기록을 했는가. 태풍 속에서 촛불을 들고 가는 심정으로 20여년에 걸친 조사와 재현이 아닌 복원을 통해 2000년전 과정을 공개했다. 아직도 복원과 기록을 해야 할 일련의 과정들이 산더미를 이룬다. 20여년 전만 해도 가는 곳마다 도공이요 석요였다. 지금은 완벽한 기능을 가진 도공들은 한 손에 꼽는 상황이다. 이제는 그 누가 이 일을 감당할 것인가. 답습 없는 창조는 이뤄질 수 없다. 우리만의 석요와 장구한 역사속에 체계화된 천연발색도기이다. 요업사에서 반드시 재평가 되어야 할 시기다. 그것은 관심이다.
사진제공 김호철
2003년 「제주의 돌가마」 사진집 발간
현, 연합뉴스 사진기자
1) 혁대망혜갈직의革帶芒鞋葛織衣 석전모옥왜자비石田茅屋矮紫扉 부병촌부급천거負甁村婦汲泉去 횡적제아목마귀
2) 장수당기藏修堂記 월재무술춘제주목결越在戊戌春濟州牧缺…본말운本末云…경자사월일목사이괴기 …탐라재남해중耽羅在南海中…시학사사진용주기사문재문언이칙벌산부해시자문와언이칙도토…
3) 대정현大靜懸…도로道路…서북소로유서오리정가미수옹점지西北小路由西五里程茄味藪瓮店至
4) 점토의 성분은 규소 59.4%·알루미늄 17.5%·칼슘 0.38%·마그네슘 1.01%·철 9.77%·칼륨 1.34%·나트륨 0.56%·티탄 1.76%·망간 0.18%의 구성비를 갖고 있음. 보편적으로 점력이 강하여 가소성可塑性은 좋으나 내구성耐久性과 내화성耐火性이 약하며 주의가 요구되는 물리적 특성을 지님.
사진1 돌가마속 옹기쌓기
사진2 잿불구멍 막기
사진3 제주도예촌 석요장의 노랑굴 소성 광경
필자약력
제주전통도예 관련 조사, 복원, 전수 27년
1994년~2005 제주도요지 조사 보고 외 논문 10여편
6회째 제주도예워크숍 추진(전시,학술발표,시연,답사 등)
현, 제주전통도예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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