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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작가마의 재조명 - 장작가마의 발생과 전개
  • 편집부
  • 등록 2006-03-27 17:5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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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작가마의 재조명

장작가마의 발생과 전개

글+사진 조태영 _ 도예가

장작가마의 재조명 - 장작가마의 발생과 전개

인류 최초의 도자기 역사는 대략 13,000~15,000년 전으로 추정되고 있다. 점토로 만들어진 기물이 불에 닿으면 단단해지고 물에 용해되지 않는 다는 것을 발견한 이후 음식을 담기위한 간단한 형태의 기물을 만들어 모닥불에 구웠던 것이 초기의 소성방법이라 할 수 있다. 원시시대인 BC8,000년 까지는 이것을 알게 되었던 것 같다.

가마의 발생
(그림1)과 같은 원시적인 노천소성 방법은 보온을 위해 웅덩이를 파고 기물을 쌓아 놓고 모닥불을 피워둔 채 동물의 건조된 배설물이나 나뭇가지 등을 덮어주면서 소성했다. 계속적인 연료의 투입은 새빨간 목단층을 만들고 이것은 수 시간 안에 기물들을 빨갛게 달구도록 온도를 올린다. 이 기물들은 주로 다량의 철을 함유한 저화도 소성용 점토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800℃정도가 되면 어느 정도 딱딱해진다. 좀 더 원만한 방수를 위해서는 고무 같은 수액을 내는 특수한 종류의 나뭇잎으로 구덩이에서 꺼낸 도자기에 문지름으로 해결했다.

(그림2)는 구덩이 밑 부분에 구멍을 뚫어 공기가 통하여 연료소성이 용이해짐으로 좀 더 높은 열을 가할 수 있게 되어 더욱 단단한 기물을 만들 수 있게끔 발전됐다. BC 5000년까지는 Anatolia(지금의 터키)에서 슬립으로 장식된 기물이 아주 흔하게 사용되었는데 이것은 산화소성을 조정할 수 있는 가마가 사용되었다는 증거이다. 원래 이 가마는 점토로 된 경사진 흙더미bank에 만들어진 것으로 화실과 여기에 연결된 방으로 되어있고 이방에 수직으로 된 굴뚝이 위쪽으로 나있다. 이러한 이유로 이 가마는 bank Kiln초기가마라 부른다. 가마를 만든 다음 예비연소를 시켜서 가마를 건조시키고 점토를 딱딱하게 한다. 얼마 후 점토벽돌이 만들어지게 되어 이것으로 화실을 튼튼히 하고 좁은 가마통로를 만들게 되었다. 좁은 연소실을 통해 재임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굴뚝이 커지고 이것이 소성실로 되었다. 이로써 기물은 위로부터 넣게 되었다. 소성된 기물의 파편과 점토와 짚을 섞어서 반죽하여 열을 보유하고 있는 쌓여있는 기물위에 놓고 몇 개의 구멍을 뚫어서 통풍을 하게 하였다.(그림3) 이것이 결국은 가마재임 과정을 쉽게 하는 옆면의 조그만 문에 달린 벌집모양의 가마를 발전시키게 된 것이다.

유럽가마의 역사
그리스와 로마시대의 전형적인 가마는 보통크기의 원형돔 가마로써 열이 화실로부터 기물을 통하여 위에 있는 굴뚝으로 곧장 올라가기 때문에 상염식가마라 부른다. 르네상스까지는 이태리에서 아-치형의 화실과 소성실을 가진 좀 더 큰 각요角窯가 나타나게 되었다. 이것은 상염식上炎式인데 소성온도는 고르지 않았을 것이다.(그림4)
대부분의 유럽지역 가마들은 희랍의 돔형가마에서 발전을 계속했다. 가마들은 점차 커지고 화구火口를 여러 개 설치하게 되었으며 연료가 나무에서 석탄으로 대치되었다. 커진 가마는 높은 굴뚝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이것은 병모양의 가마bottle kiln로 발전되었는데 이 가마는 하부에 시유한 기물을 소성하는 방과 상부에 초벌구이를 하는 높은 방을 갖고 있다. 유럽에서 처음으로 자기가 만들어 진 것은 1710년을 넘지 않는다. 그리고 산업혁명 기간 동안에 비로소 큰 고화도 가마가 완성되었다. 도자기 소성용가마의 발전은 도자기가 낮은 온도의 토기에서 점차 고온의 자기로 발전됨과 병행해서 발전된 것이다.

중국가마의 역사
중국에서는 BC 4,000년 경 신석기시대의 앙조문화기에 앤더슨토기로써 유명한 채색도자기가 만들어져 그 후 얇고 섬세한 수법을 사용한 검은 도자기 등도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BC1,000년경의 은 왕조시대에는 흰도자기가 생산되었고 또한 물레가 보급되고 소성의 온도도 진사도자기를 주조하기 위한 고온기술의 영향도 있어 점차로 고온으로 구워지게 돼 그 때문에 가마도 점차 발달하게 되었다.
(그림5)는 통가마 형식으로 제일 아랫부분에서 불을 지핀 후 점차 소성해 올라 갈수록 위에 나있는 창골 구멍으로 연료를 투입해 감으로 소성하는 구조이다.
또한 중국은 고화도 점토-카올린과 더불에 석기점토와 내화점토를 많이 갖고 있었고 한漢나라(206BC-AD220)때 까지는 고화도식기가 만들어졌다. 중국인들은 자연스럽게 공기를 빨아들이게 하기 위하여 보통은 경사면에 긴 고화도 가마를 지었다. 낮은 쪽에 있는 화실 끝은 돔으로 되어 있고 아치형으로 된 소성실은 경사면 위로 올라갈수록 차츰 작아져서 공기의 양을 많이 빨아들이게 되고 온도도 균일하게 된다. 이 소성실은 커서 높이가 4~5m나 되는 곳도 있다. 온도를 균일하게 하기 위해 가마를 여러실로 나누고 각실마다 개별적인 화실이 있게 하였다.(그림6)
한국가마의 역사
우리나라도 선사시대에 토기를 제작하였다. 선사시대란 역사이전의 시대로 삼국시대 이전이며 구석기시대에는 점토를 사용할 줄 모르던 시대이고 신석기시대의 대표적인 토기인 빗살무늬토기櫛文土器가 한반도 만주 시베리아 일대에 분포되어 있는 것이다.
토기가 주로 구워졌던 삼국시대의 가마, 특히 백제토기의 가마터를 살펴보면 대형 가마와 소형 가마로 구분이 되는데 대형가마터들은 야산 경사면의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다. 길이 6.8~7.9m 너비 3~3.5m의 규모로 이들은 화구火口쪽으로부터 야산 경사면의 지하에 굴을 파 들어가 설치한 지하굴식 가마였다. 가장 큰 특징은 화구의 구조로써 화구바닥이 당시의 지표면보다 1.2~1.9m 아래에 있는 점이다. 소성실은 화구로부터 일단 넓어졌다가 뒤쪽으로 가면서 차츰 좁아졌으며 바닥도 화구바닥보다 일단 높아져 16°~25°의 경사면을 이루고 있었다. 소형가마터들은 야산 경사면의 위쪽에 배치되어 있었고 길이 3~ 3.6m, 너비 1.5~2m 규모이다. 이들의 바닥은 지하로 들어갔으나 가마의 벽 일부와 천장은 지상으로 나온 반지하식 굴가마로 추정되었다. 이 소형가마들도 화구의 바닥은 당시 지표면보다 0.6m~1.2m아래에 있는 형식이며 소성실은 화구보다 넓고 바닥도 화구바닥보다 1단 높아져 16°~30°의 경사를 이루었다. 대형은 경사면 아래에, 소형은 경사면 위에 배치가 정형화 되어있고 대형가마에서 소형가마로 변천된 것으로 추정된다. 주로 회청색 경질토기가 많고 그다음으로 회백색연질토기, 적갈색연질토기의 순으로 구워졌다.
(그림7)의 통가마 형태는 대체로 도기陶器(토기, 옹기) 소성에 많은 역할을 했을 것이다. 점차 고화도 유약(청자, 백자, 분청)이 대두됨으로써 더욱 높은 열이 필요하게 되어 각 실室마다 칸을 만들어 열기가 바로 빠져버리는 통가마에 비해 열을 어느 정도 머물게 한 다음 그 다음칸으로 옮겨가게 해 높은 온도의 자기磁器도 원활히 소성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칸이 지어지므로 열효율이 좋고 산화, 환원소성 모두가 용이한 것이 특징이다.
(그림8)은 붕판이나 지주가 개발되기 이전의 가마내부 모습으로 첫째 칸 바닥이 뒤 살창까지 경사면을 이루어져 있다. 조선시대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세종 6년(1424) 1424~1432년까지의 자료에서 전국에 325개의 도자기소1)가 실질적으로 생산 활동을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가마사진 -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문경 망뎅이 장작가마

사진1-낮은 돋임(개떡) 사발, 접시 등 균일한 자기를 굽는데 사용됨
사진2 - 높은 돋임 굽이 좁은 종발, 완 등의 소성이나 열효율을 높이는데 사용


 

위 자료는 그 당시 호조戶曹에서 각 주州나 현縣에서 생산되고 있는 토산공물을 수납하고 있는지를 조사한 것이다. 충청, 경상, 전라도 지역에 도자기소가 많이 분포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사된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장작가마는 현재 문경읍 관음리에 위치한 약 150년된 <문경 망뎅이 사기요沙器窯>이다. 이 가마는 1843년 9월, 처음 개설돼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봉우리 6칸짜리 망뎅이 가마이다. 망뎅이가마는 역사성과 문화재적 가치가 인정되어 1999년 경상북도에서 민속자료로 지정되었며 현재는 사용치 않고 있다.(사진1)

마지막으로 모든 걸 종합해서 필자가 집필한 서적 「도예가를 위한 장작가마」를 인용해 장작가마의 가장 바람직한 각 부분별로의 치수를 언급하고자 한다.(그림9, 10)
장작가마에 대해서는 자료나 문헌이 전무한 상태이고 그냥 구전口傳으로만 전해 왔을 따름이다. 그런 연유로 장작가마를 축로하는 사람과 지역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주지해주기 바란다.

그림9 위에서 내려다본 봉통과 첫째칸
그림10 옆에서 본 봉통과 첫째칸

참고문헌
김세광 「상주의 도자기 생산과 요지」 상주문화원 1998
정동훈 「가마짓기와 번조기법」 디자인하우스 1991
신승우 「공예재료와 기법」 태학원 2003
방웅정 「국립청주박물관」 통천문화사 1999

 

1) 도자기소라 함은 도자기를 하던 곳 즉 도자기 가마가 있는 곳이라는 말이다. 도자기란 말 자체가 도기 + 자기인 만큼 도자기소도 도기소와 자기소로 구분지을 수 있다


필자약력
일본 소석원요 도자기 기술연수(3년 6개월)
특허 제0358883호(나무문양)
실용신안 제329637호(일인용녹차다기)
품질인증 지정업체 (충청북도)
집필서「도예가를 위한 장작가마」 태학원, 2003
요업(세라믹)기술원 도자기 기술교육 장작가마 강의(2005.10.4)
현, 현운요 운영

 

<본사이트에는 일부 표가 생략됨.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06년 2월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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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cerazin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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