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토의 거듭나기
글 송미령 _ 도예가
나의 작품세계에 대해 말하자면 나란 누구인가에 대해서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원래 글쓰기를 좋아하여 작가가 되고 싶어서 철학을 전공했었다.논리력을 갖추면 글쓰기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졸업 후 일찍 결혼을 하고보니 짧은 사회경험에 글쓰기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살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이렇게 내 자신의 열정을 포기할 수는 없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이론적 학문을 계속하기는 자신이 없었고, 평생 좋아하면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언가 고민하다가 도예를 하기로 결심했다. 집에서 할 수 있는 동양화 공부부터 시작하였다. 아직 아이들이 어릴 때여서 본격적으로 도예공부는 못했으나 끊임없이 관심을 갖고 기나긴 준비를 한 셈이다.
꿈을 가지고 있으니까 대학에서 대학원으로 서서히 길이 열렸다. 나이 어린 친구들과 뒤늦게 배우는 학교생활이 쉽지는 않았다. 살림살이에서는 느낄 수 없던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대학원에 들어갈 때까지는 내 성격이 꼼꼼하지 못하고 느긋하여 캐스팅 작업은 도저히 적성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논문 주제를 정하는 과정에서 조각보 천의 질감과 색 내기에 캐스팅이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나의 지도교수 권영식 교수는 나이 많은 제자를 기초적인 것부터 자상하게 가르쳤다. 나는 캐스팅 작업을 통해서 약간의 성격 교정을 할 수 있었고 요즈음은 석고 뜨기(몰드제작)의 재미까지 느끼고 있다.
2004년도 졸업 논문과 전시회 주제는 <전통조각보를 응용한 벽장식>이었다. 한국인으로서 무궁무진한 전통소재를 재해석하여 나의 것으로 만든다는 것이 보람되었으며, 여성으로서 평소에 친근한 소재인 조각보에 관한 학술적 조사와 작업 준비과정은 매우 즐거웠다.
조선 여인네들이 쓰고 남은 천들을 버리지 않고 두었다가 소일거리로 만들었던 상보, 이불보 등은 그 면 분할과 색채 구성이 현대의 시각에서 볼 때도 찬탄을 금치 못한다. 오늘날 우리가 잃어가는 소박함과 알뜰함의 정서를 상기시키며, 조각보가 가진 조형미와 천의 질감을 도자로 표현하고자 함이 내 작품의도였다.
2005년, 한전아트갤러리에서 가진 도벽전시회에서는 전통조각보, 서양조각보인 퀼트, 자수, 뜨개질 등으로 그 범위를 넓혀 보았다. 전시 제목은 <To be born again - from clay to fabric ->이었다. 삼베 천과 마대, 실 등을 이용한 슬립 캐스팅 작업 이었다. 점토를 이용하여 섬유라는 전혀 다른 재료의 물성을 표현하며, 거듭남의 상징성에 관해 접근하는 것이 주제였다.
나는 어머니 태 속 부터 교회를 다녔다. 어린 시절부터 나를 둘러싼 여러 계율 속에서도 위로가 되었던 말은 구원과 거듭남에 관한 원리였다.‘거듭남’이라는 말은 다시 태어나다, 즉 신앙이 깊어져서 새사람이 되었다는 뜻이다. 오늘의 내가 맘에 안 들면 내일 새로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은 무척이나 희망적인 메시지이다. 쉽진 않지만 이성과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에겐 가능한 일이다. 이는 기독교인으로서 끊임없이 거듭나고자하는 소망과 나를 보통 아줌마에서 도예 작가로 거듭나게 한 이에 대한 감사함의 신앙고백이기도하다. 삼베나 마대란 직물은 천 중에서 가장 값싸고 겸손하게 쓰이는 직물이다. 삼베는 상가 집에서 쓰이고, 마대도 주로 농산물을 담는데 쓰이는 결이 뚜렷하고 소박한 느낌을 주는 천이다. 이를 이용해 아름다운 작품이 되었다면 소재의 거듭남이 아닌가. 거듭남의 상징성에 관해 가장 서술적인 작품은 ‘누에’다.
바닥을 기어 다니던 벌레가 - 일시적인 죽음의 상징인 잠을 통과하면서 - 여러 번의 거듭나기를 하여 하늘을 나는 나비가 되는 과정을 묘사하였다. 뜨개질의 겉뜨기 안뜨기 기법을 응용한 볼록한 그림부분을 따라가다 보면 나비가 보인다. 채색도 밝음과 어두움을 써서 죽음과 새로 태어남, 추악함과 화려함 등의 대조적인 상징성을 표현하였다. 조형적 가치를 나 스스로 판단하기 어렵지만 크기로 보나 들인 노력으로 보나 현재까지의 대표작이라고 생각한다. ‘거듭남’이란 신앙적인 단어로 여러 가지 해석이 떠올랐지만 그 이전에 이미 도자작업 자체가 불에 의한 거듭남이 아닌가.
전시회를 할 때마다 도벽의 작품 외적인 문제에 난감함을 느낀다. 액자에 부착하는 접착 방법에서부터 액자의 테두리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까지 고민거리였다. 지난번에는 작품의 무게를 전시장의 칸막이벽이 지탱할 수 있을까 하는 것도 문제가 되었다. 내 작품의 궁극적인 전시목표는 건축물의 벽에 견고히 부착되어 주위 환경에 생기를 주는 것이다 따라서 작품의 크기와 무게에 구속 받지 않고 맘껏 구상할 수 있는 기회를 꿈꾸고 있다. 또한 소지와 유약의 영역을 넓혀서 여러 가지 재료를 작품에 활용해 보는 것이 앞으로의 계획이다.
1 「누에」
2 「마대」
3 「연」
4 「조각보」
필자약력
2004년 서울 산업대학교 대학원 도예과 졸업
1996년 단국대학교 도예과 졸업
1980년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 졸업
2005년 제2회 개인전 (한전 갤러리)
2004년 제1회 개인전 (공예 문화 진흥원)
작업실 : 경기도 평택군 청북면 백봉리 341
e-mail : smrpotter@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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