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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믹 클러스터의 현황과 발전방향
이천 지역 도자기클러스터의 현황과 발전방향
서정걸 세계도자기엑스포 도자연구지원센터장
이천하면 전통도자기의 낭만적 요소들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도공들이 운영하는 소규모 요장들이 모여 있고, 거기에서 물레를 돌리는 장인들과 만날 수 있으며, 도자기가 벌겋게 익어가는 장작가마를 볼 수도 있었다. 오늘날 이천이 도자기 산지로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바로 전통도자기 산지로서의 특수한 분위기에 힘입은 바 크다. 제품을 만드는 공장이 아니라, 혼이 깃든 공예품을 만드는 요장의 이미지가 사람들의 마음을 끌었다. 80년대까지도 이천의 요장들은 전통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곳이었다. 비록 모든 것이 영세했지만, 장인들의 열정과 정신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이천 지역의 도자클러스터는 바로 전통적 방식의 요장들이 모여들면서 생겨난 자연발생적인 클러스터이다. 관련 산업체들의 공간적 군집으로 이루어진 다른 산업클러스터와는 분위기부터가 다르다. 타 산업과 비교하여, 역사적으로도 다르고, 성격에 있어서도 다르다. 따라서 이천의 도자클러스터를 이야기하려면, 일반적인 산업클러스터와는 다른 각도로 접근해야 한다. 즉 생산의 효율성을 기하기 위한 분업화 또는 관련업종의 공간적 군집 측면에서만 볼 수 없는 특별한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이천의 전통도자는 일반적인 산업제품이 아닌, 전승공예품으로서 예술적 가치를 포함하고 있다. 즉, 예술과 산업이 혼합된 형태여서 클러스터의 성격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도자라는 상품과 도자문화라는 상품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생산기능들의 공간접 군집으로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 요소, 관광적 요소, 예술적 요소들이 종합적으로 기능하는 체계를 가지고 있다.
이천 도자클러스터의 형성과정
이천이 도자의 고장으로 자리 잡은 것은 자연발생적이며, 장기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따라서 정부 정책에 의해 이루어진 산업단지와는 사뭇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 개발계획에 의해 이루어진 산업단지들과는 달리 소규모 공방 위주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산업인프라가 미흡하고 관련 산업간의 상호 연계도 잘 되어있지 않다. 그러나 오랜 기간 도자의 고장으로 알려져 왔기 때문에 도자산지로서의 장소적 가치는 대단히 크다. 이천지역이 가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 브랜드는 역시 도자기다. 도자기 중에서도 장인정신이 배인 전승도예 또는 전통도예로서의 이미지로 정착되어 있다.
이천에 전통도자가 발생한 것은 1950년대 후반부터다. 조선시대 말까지 유지되었던 경기도 광주의 분원관요(官窯)에서 활동하던 도공들 일부가 이천으로 유입되었을 가능성도 이야기되지만, 뚜렷한 활동의 흔적이 남아 있지는 않다. 따라서 이천의 수광리에서 최초의 자기가 구워지기 시작한 1950년대 후반을 이천 도자기의 생성시기로 볼 수 있다. 1950년대에 서울의 대방동가마와 성북동가마에서 고려청자와 조선백자 재현을 연구하던 도예가들이 이천의 칠기가마를 이용하여 도자기를 구워내면서 도예가들이 하나둘 이천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광주요의 창업자인 조소수가 수광리의 칠기가마를 인수하여 지순택을 공장장으로 하고 홍재표를 대장으로 하여 수금도요를 설립했다.(1957년으로 추정) 비슷한 시기에 해강 유근형이 수광리 칠기가마에 와서 청자를 실험하다 정착하여 고승술, 이현승 등과 함께 수려도요를 경영하기 시작했으며, 60년에 해강고려청자연구소를 열었다. 한국조형문화연구소 출신인 김완배도 1961년 수광리로 내려와 백자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김완배는 안타깝게도 67년에 타계했다.
이천의 첫 번째 도자기 요장이었던 수금도요는 창업 후 얼마 안가서 3개 요장으로 분리된다. 조소수가 63년 광주요를 창업했고, 지순택은 고려도요를, 홍재표는 삼보요를 창업했다가, 다시 한국도요공사를 설립했다. 71년에는 방철주가 자금을 대고, 당시 최고의 도자성형 기술자로 알려진 고영재를 대장으로 영입하여 신둔면 수하리에 동국요를 열고 청자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5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중반까지는 10여개의 요장들이 활동했으며, 그 요장들을 운영했던 사람들이 이천 도자기의 선구자들이라 할 수 있다. 1965년 한일국교 정상화 이후 일본인 관광객들에 의한 전통도자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70년대 중반부터 요장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76년부터 85년까지 46개의 요장이 새로 생겨났으며, 86년부터 95년까지 10년 동안 100여개의 요장이 신설되었다. 세계도자기 엑스포가 열렸던 2001년 이후 300개가 넘는 요장들이 존재했으며, 현재 257개 요장이 조합에 가입되어 있다.
8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도자기 축제 행사는 이천을 도자의 고장으로 널리 알리는데 기여해 왔으며, 2001년의 세계도자기엑스포 행사와 격년제로 실시되고 있는 세계도자비엔날레 행사는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이천을 도자의 도시로 승격시켰다. 도자는 이제 상품으로서의 가치 뿐만 아니라, 문화상품으로서, 그리고 관광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
최근 10여년 동안 장기적인 경제적 침체와 맞물려서 도자기의 생산과 유통이 매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더구나, 고려청자나 분청사기, 조선백자 등의 재현품적 성격의 작품들을 생산해온 요장들이 대부분인데 반해, 그러한 작품들의 수요가 급격히 줄어든 것도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또한 도자기를 소비하는 세대가 젊어짐으로써 소비자 취향은 나날이 바뀌어감으로써 변화에 민감하지 못한 요장들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최근의 도자기축제는 그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요장들의 노력을 느끼게 해준다. 지난 4월부터 5월에 걸쳐 개최되었던 20회 이천도자기 축제에 출품된 도자기들을 분석해보면, 전통도자 재현품은 현저히 줄어들고, 생활자기제품들이 그 자리를 메우고 있다. 작품 또는 제품의 동향은 소비자의 취향변화에 따라 변화해 가겠지만, 이 지역의 도자가 계속 발전하고 브랜드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시대에 맞고, 도자의 특성을 잘 살릴 수 있는 클러스터의 재형성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예술과 산업이 결합된 도자클러스터
앞에서 잠시 언급했듯이 도자기는 예술이면서 산업이다. 그러한 점이 도자클러스터의 개념을 잡는데 어려움을 준다. 반면에 바로 그런 점이 도자클러스터의 매력이 될 수 있다. 도자기라고 하는 상품 속에는 실용성과 동시에 예술성이 공존한다. 도자기는 경제가치만 가지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 가치를 동시에 가진다. 때문에 일반 산업클러스터의 모델을 도자기에 적용하면 도자산업의 특성을 잘못 이해한 게 된다. 타 산업의 클러스터는 생산기능의 군집이지만, 도자클러스터는 문화와 체험, 감상 등의 요소들이 결합되어 있음으로서 소비자를 직접 끌어들이고, 유통시키는 기능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단지 도자를 생산하는 기능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소비자들에게 제작과정과 작품 전시장 등을 관광상품으로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소비자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어 문화와 예술적 체험기회를 제공해야한다. 이처럼 생산 기능 외에 체험기능 전시기능 등을 상시 가동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이러한 요소들은 일반 산업클러스터에는 전혀 없는 도자클러스터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축제나 비엔날레 같은 행사 또한 도자문화의 상품을 서비스하는 주요한 인프라다. 이러한 대규모 행사는 그 효과가 매우 크므로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비자들의 취향을 고려한 다양한 내용으로 구성되어야 하며, 축제로 인해 유입되는 많은 관람객들에게 도자문화를 경험케 하고, 그들을 이천 도자제품의 확실한 구매자로 만들어야 한다. 도자기 축제는 단순히 이미지 홍보를 위한 수단에 그쳐서는 안된다. 축제장에서 소비자에게 지역 도자제품의 가치를 확실히 인식시키기 위해서는 새로운 마케팅전략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축제나 비엔날레 행사는 판매시설과 공연이벤트 위주로 전개되어왔다. 행사의 성공은 관람객 수로 평가되었고, 판매액으로 평가되지는 않았다. 관람객의 수자에 비하면 매출액이 많았다고 볼 수 없다. 그것은 축제의 기획 단계부터 마케팅 전략이 고려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자기 클러스터는 기능의 연계나 결합뿐만 아니라 문화적, 예술적, 관광적 성격이 가미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의 운영과 관련한 내용들을 끊임없이 연구해야 된다. 즉 도자기 클러스터는 늘 살아 움직이는 조직체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 소비자들이 현장을 직접 찾아오는 클러스터이기 때문이다.
도자클러스터를 발전시키기 위한 과제들
이천은 도자클러스터로서의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250여개의 도자기 생산 요장과 재료상, 도자학과를 가지고 있는 대학, 도자 전문 연구기관으로서의 요업기술원(이천에 분원이 2007년에 설치될 예정임), 세계도자기엑스포재단을 비롯한 도자관련 기관 및 단체 등 클러스터를 구성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조건을 구비하고 있다. 이들 구성요소들이 긴밀한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새로운 지식, 기술혁신, 신속한 제품생산, 비용절감 등 시너지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과제들을 해결해야 한다. 그 과제들이란 지역도자를 선호하고 소비할 수 있는 수요층의 창출을 비롯하여, 소비자들이 즐겨 찾아올 수 있는 문화 관광지로서의 도예촌이미지 정비, R/D기반의 체계화 및 산 ? 학 ? 연을 연계 접속시킬 수 있는 시스템 정비 등을 꼽을 수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 도자소비가 활발하지 못하다. 소비가 활발하지 못하다는 것은 역으로 잠재수요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새로운 수요층을 창출하기 위한 다양한 전략이 필요하다. 이천 지역에서 생산되는 도자기의 문화적 가치와 실용적 가치를 널리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마케팅이다. 도자클러스터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이천 도자의 가치에 대한 인식을 계속 성장시켜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즉 가치를 아는 수요층을 계속해서 만들어나갈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도예의 과정을 체험산업으로 발전시켜, 수도권의 체험산업 수요증가의 못을 차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체험을 위한 체류를 유발시키고, 체험자들을 미래의 수요자로 육성시켜나가는 장기적인 수요창출 노력이 필요하다.
도자클러스터의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로 소비자들이 현장을 직접 찾아오게 하는 소비자 대면형 클러스터에 대해 앞에서 이야기 했다. 지역이 가지고 있는 도자이미지를 극대화하고, 매출의 증가로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체류형 문화공간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단순히 도자기 판매시장으로서의 이미지만 가지고는 한계가 있다. 도자문화, 관광, 체험 등을 제공할 수 있는 기능들이 잘 정비되어야 소비자들이 직접 찾아올 수 있다. 더불어서, 이천지역이 가지고 있는 관광자원인 온천 쌀 복숭아 등을 연계한 프로그램을 개발 운영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산학연을 연계하는 R/D기반을 체계화하고, 그 기능들이 원활하게 연계 접속되어 생산에 활용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특히 소지부문의 안정적 공급을 위한 생산 시스템, 새로운 기술이 접목된 상품개발로 인한 시장개척 등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도자클러스터의 시너지 창출 및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R/D기능의 확보가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도자문화의 결집체로서 거듭나야
이천의 도자클러스터는 자연발생적으로 발전해왔기 때문에 많은 취약점을 가지고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도예촌으로서의 이미지가 매우 약하며, 도자기 상점들도 정비가 되지 않은 상태이다. 오히려 개발되기 이전의 상태가 도예촌으로서 정감이 갔었다. 80년대 이후 이천이 중소도시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도예촌의 이미지를 살리기 위한 정책이나 방안이 부족했다고 볼 수 있다. 요장들의 숫자는 매우 많지만 신둔면 수광리를 중심으로 산재해 있어서 도예촌으로서의 관광요소를 찾아보기 힘들다.
현재 이천시는 도자특구로 지정이 되었고, 요업기술원 이천 분원이 건축되고 있으며, 도자이미지사업이 시행되고 있다. 세계도자기엑스포 재단은 이천 광주 여주의 도자산업을 진흥시키기 위한 중장기적 발전방향을 모색하고 시행하고자 하고 있다. 그중 가장 중요한 정책이 바로 도자문화 클러스터 구축을 위한 중장기 계획이다. 도자문화클러스터 안에는 도자산업과 도자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는 여러 가지 정책방향을 담고 있으며,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주요시책들에 대해 연구를 착수했다.
이제 도자산업과 도자문화, 도자체험 등 다양한 기능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새로운 도예촌 건설이 정책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본다. 예를들면, 새로 건설될 경전철의 신둔역사를 중심으로 한 도예촌을 정비하고, 도자특화단지를 조성하고, 도자기 시장 및 체험장, 국내외 유명작가들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상시 운영할 수 있는 시설 등을 만들어 도자문화 관광의 명소로서 거듭나야 할 것이다. 한국의 도자문화가 결집된 곳으로 새롭게 거듭나야만 소비자가 항시 찾아올 수 있는 소비자대면형 클러스터가 완성 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천의 도자클러스터는 도자문화클러스터로서 국내는 물론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다.
필자 주요경력
홍익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졸업
중앙일보사 월간미술 기자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큐레이터 역임
경희대 중앙대 세종대 등에서 미술사 미술이론 강의
세계도자기엑스포 조직위원회 전시부장, 비엔날레 운영부장
도자연구지원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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