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예 전문서 발행의 문제점과 대안
글 이세용 _ 도예가
어느 한 나라에서 현재 출판되는 서적의 종류와 부수는 그 나라의 문화 수준과 정비례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을 조금 뒤집어 보면 어느 분야에서 그 분야의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지표로 출간되는 관련 서적의 종류와 부수를 거론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가까운 예로 우리나라를 흔히 IT강국이라 부르고 있는데 이는 출판되고 있는 컴퓨터 관련 서적의 종류나 량으로도 충분히 그런 소릴 들어도 무방하다 할 만하다. 실제로 서점에 가 보면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외국어 학습 교재와 컴퓨터 관련 서적을 취급하는 코너일 것이다. 예술 관련 서적을 취급하는 코너도 꽤나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그 곳은 대개 미술 음악 연극 무용 등을 포함할 뿐 만 아니라 심지어는 취미 서적 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미술 서적 중에서도 가장 많은 것이 순수 미술이나 혹은 디자인 관련 서적이며 도자기를 비롯한 공예 관련 서적을 찾아보기란 참으로 어렵다. 이러한 공예 관련 서적은 대형서점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데 작은 서점에서야 말할 것도 없다. 물론 수요가 없기 때문이라는 데 이견이 있을 수는 없다.
전문 서적의 주 고객은 관련 종사자나 학생이다. 잠재 수요자로서는 관련 분야에 대한 관심이 많은 사람이나 혹은 예술분야에서는 취미로 즐기는 사람들일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도예 분야는 사실 상당한 수요층을 가지고 있다. 각 대학의 도예 관련 학생 수는 관련 학과까지 합한다면 상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현재 도예 관련 학과의 인기가 곤두박질쳐서 학생수가 많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 국내에서 도예 관련업에 종사하는 사람의 수도 상당하며 취미활동으로 도예를 접하는 사람의 수는 그보다 훨씬 더 많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으로 보아 잠재적 수요자까지 합하면 그 수요층은 상당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이러한 수요층을 가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도예 관련 서적의 출판이 미흡한 건 무슨 이유일까. 일단, 잡지 성격을 갖고 있는 대중매체에 대한 언급은 뒤에 하기로 하자.
우선 교과서적 성격을 띄고 있는 몇몇 대학교수들의 저서를 살펴보자. 물론 교과서적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내용이 수평적이 될 수밖에 없겠지만 너무 깊이가 없을 뿐 만 아니라 대다수의 책들이 다 “똑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과서이니까, 그래서 각 분야별로 다 수록해야 하니까 라고 하기엔 좀 아쉬운 점이 많다. 또한 이러한 문제보다 더 심각한 건 정확한 사실을 기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각자의 전공 분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동 집필도 아니고 혼자서 여러 분야를 집필한다는 게 당초에 무리일 수밖에 없다.
그 저서들을 보면 먼저 생각나는 말은 누구누구 저著라고 표기하는 것보다는 편저編著라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물론 아예 전문 서적을 표방하고 출간되는 저서의 경우(예를 들어 석고 성형 방법이나 혹은 유약 제조 등등)는 그런 비난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다.
태토나 유약을 과학적으로 공부한 적이 없는 사람이 책 속에 그 분야를 삽입하려니 당연히 엉뚱한 소리가 되는 경우도 있고 전혀 사실과 다른 소릴 하는 경우도 있거나 또는 엉거주춤한 채로 끝나서 변죽만 올리는 꼴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우리나라나 중국 도자사를 거론하는 데도 그렇고 성형이나 소성에 관해서도 엉뚱한 것을 사실인 양 게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다보니 도예를 전공하는 학생이나 혹은 도예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책에 나오는 데이터는 다 가짜라고 말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고 그 결과 책을 구입하고자 하는 의지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필자에게도 그런 불만을 토로하는 작가들이 많은 데 그 때마다 참 난감하기 짝이 없다.
이러한 교과서적인 서적 말고도 요즈음에 도예인이 아니라 전혀 관계없는 사람들에 의해 도자에 관한 서적들이 가끔 출간이 되곤 하는 데 여기에도 문제점이 상당히 산재되어 있다. 특히 차를 한다는 소위 차인이라는 사람들이 다뤄놓은 다기관련 저서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많다. 우선 도자기에 대한 안목과 지식이 없는 사람들이 단편적인 지식으로 저술한 서적은 잘못된 정보의 전달로 인한 피해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분들 중엔 도자기를 전공한 사람들보다도 깊은 지식을 갖고 있는 분들도 많다. 그러나 대부분의 저서들 중 산화와 환원의 개념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제대로 된 원료의 성분이나 역할도 모르면서 기술해 놓은 서적들을 보면 안타깝다기보다는 화가 난다. 그러다 보니 도자기를 신비스런 모습으로 둔갑시켜 사람들로부터 격리시키기도 하고 또한 특정 작가를 대단한 대가로 만들기도 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알고 있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를 살펴보자. 일본의 경우 도예 관련 책자는 수도 없이 많이 출간되고 있다. 전문서적은 말할 것도 없이 초보 수준의 입문서, 장르별 책자, 월간지, 계간지 등등 그 종류도 아주 다양하다. 필자도 일본에 가면 자주 책자를 구입하는 편인데 갈 때마다 새로운 책자를 골라 구입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일전에 과학자 한 분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학문 하는 데 언어는 영어와 일본어만 하면 거의 불편함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 분이 불어와 독어까지 섭렵하시는 인사이었기에 괜한 말로 여겨졌었는데 그분의 다음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에서는 각 분야에 대한 좋은 책자가 세계 어느 나라에서 출간이 되더라도 일 년 내에 번역본이 나오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참으로 부러운 나라가 아닐 수 없다.
일전에 한 후배로부터 영국에서 출판된 아주 괜찮은 책 한 권을 번역했으니 감수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었다. 물론 도자기를 전공 하지 않은 사람이 번역하다보니 전문 용어나 화학 용어 등의 번역에 문제가 많을 수밖에 없었으나 책의 내용은 꽤나 괜찮아 보였다. 많은 돈을 들여 출판한 이 책이 판매되지 못하고 거의 창고 신세를 지고 있는 것을 보면 답답하기 짝이 없다. 이는 출판한 사람의 적극적인 홍보부족의 탓도 있지만 도예인을 비롯한 도자기 관련 종사자들의 무관심도 문제라 할 수 있다.
또한, 예술 전문서적을 발간하는 몇몇 군데의 출판사(여기에는 단행본을 발간하는 잡지사도 포함이 될 수 있다)의 전문성 부재와 사명감 부족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일례로 어떤 책자를 보면 외국 책을 거의 옮겨놓다시피 한 것을 버젓이 작자의 이름으로 출판하지 않나, 또 전혀 검증되지 않은 데이터들을 집대성한 책자들을 출판하지 않나 참 한심하기 짝이 없는 경우도 많다. 또한 좋은 기획을 가지고 있는 도예가가 책자를 출판하자 하여도 저자가 알려지지 않은 작가라서 독자의 확보가 어렵다는 이유를 내세워 기피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도예 관련 잡지에 대해서 거론해 보자. 우리나라 도자 관련 잡지는 현재 월간 도예가 가장 오래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전에 월간 디자인에서 잠시 출간한 적이 있었던 월간 공예를 들 수 있겠으나 이는 도자기만을 다룬 것이 아니고 공예 각 분야를 다룬 잡지였으며 그나마 얼마가지 않아 출간이 중단되고 말았다. 또 후발 주자로서 월간 크라트가 발행되었으나 이 역시 공예 전반을 다루고 있다. 아주 근간에 도자 문화라는 잡지가 발간이 되었으나 아직 그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듯하다.
월간지의 속성도 있겠지만 이 잡지들의 대부분이 갖고 있는 문제점은 대략 한 가지로 집약해서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성격이 일단 모호하다. 즉, 전문가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학생을 위한 것인지 또는 취미로 도예를 하고 있는 아마추어를 위한 것인지 또는 단지 도예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일반인들을 위한 것인지 그 경계가 모호하다. 잡지라는 속성이 갖는 특성이 그러한 다양성일 수도 있으나 이러한 경계의 모호함이 오히려 독자의 외면을 받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물론 발행인의 입장에서는 어떤 계층이라도 다 만족시킬 수 있는 잡지를 발간하는 게 꿈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특정 분야의 잡지를 표방하고 출간하였으면 그 성격이 확실하면 좋을 듯하다. 그게 오히려 확실한 독자층을 확보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 도예 관련 잡지는 도예가가 구독하기엔 쓸 데 없는 부분이 많고 또한 학생이 보기에도 쓸데 없는 부분이 많다. 아마추어나 도예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백화점식 나열을 하고 있는 여성지와는 그 성격이 다른 것이 전문지일 것이다. 다른 분야의 월간지들의 예를 들어 보자. 회화나 건축 관련 잡지는 확실한 전문지에 가까운 성격을 갖고 있다. 그런데도 이들 잡지는 도예 잡지보다 발행 부수도 많고 훨씬 고수익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그 쪽의 독자층이 많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도자기 역시 그만한 잠재적 독자층을 갖고 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보면 그 독자를 흡수 할 수 있는 방법은 오히려 가장 가까운 데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가장 바람직한 전문 서적의 출판 중심에는 대학 교수들과 오랜 경험을 축적한 현장 출신의 기술자 그리고 출판사가 있어야 한다. 교수는 우수한 학생을 양성하는 것과 연구 활동이 그 역할이자 의무이다. 그들이 학생을 가르치면서 축적한 지식과 꾸준한 연구 결과를 과장하거나 포장하지 말고 솔직하게 풀어내야 하며 연구 활동에서 얻어진 결과물도 노하우라며 공개하지 않는 것은 도덕적으로도 문제가 있다.
또한 현장에서 오랜 경험을 축적한 기술자나 연구소 등에서 많은 연구를 한 학자들의 집필도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 이분들이 집필한 서적이 보다 전문적이라 할 수 있다. 이분들이 현장이나 연구실에서 습득한 기술은 아주 귀한 것이며 또한 이러한 지식은 필히 후대에 물려줘야 하며 이를 위해서라도 집필은 적극 권장이 되어야 한다. 이런 일의 주체는 출판사의 몫이라고 생각된다. 이분들에게 계속 그런 일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지원하는 일이야 말로 출판사의 몫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필자약력
경희대학교 도예과 및 동 대학원 졸업
개인전 9회 및 단체전 다수 출품
성글라라수녀원 도벽 제작
독일 Handwerksmesse Koblenz(Messe Am Rhein) 출품
2002한일도작가전(호문화랑, 일본 동경)
요업기술원 책임 연구원 역임
명지전문대학교 공예과 겸임 교수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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