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석자 우관호 _ 홍익대학교 교수
김종인 _ 도예가 흙의시나위 회장
오은교 _ 도예가, 흙의시나위 회원
윤두현 _ 자유기고가
기록정리 김태완 본지 기자
지난달 창립 15주년을 맞은 여성전업도예가들의 모임인 ‘흙의 시나위’전이 열렸다. 이 전시를 통해 드러난 현대도예가 안고 있는 과도기적 문제점들을 작가, 교수, 자유기고가가 모여 이야기를 나눴다. 흙의 시나위가 모이는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그밖에 다른 도예단체들은 어떤 목적으로 모이고 함께 전시를 하는지… 이슈를 담은 전시는 어떤것인지… . 성숙한 단체의 볼만한 전시를 위해 작가도, 전시기획도 한뼘 성장해야 할 때다. 도예계 극소수에 불과한 4명이 모인 이 자리에서 나온 문제들로 담론이 형성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이번 좌담은 도예 단체와 전시의 미흡함을 인식하고 서로 다른 입장에서의 견해를 나눈다는 데에 의미를 두고 진행됐다.
비제도권적 모임을 지향하는 여성전업도예가들의 모임
우관호 흙의 시나위가 15년간 지속돼 온 자체만으로 우리 현대도예계의 역사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국내에서 한국현대도예가회 등 이른바 제도권적인 모임 이외에 15년을 진행한 전시그룹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도상전, 도자소조회, 도림전 등의 동인회 형식이 대부분이었죠. 따라서 앞으로 2, 30년 후를 조명해본다면 분명 의미가 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한편 흙의 시나위가 지닌 문제도 있습니다. 특별한 주제가 없는, 이합집산적 느낌이 강하다는 점입니다. 모임이 표방하는 바가 무엇인지 뚜렷하지 않은 느낌이죠.
김종인 ‘흙의 시나위’는 창립멤버 중의 한 명인 문재희씨에게 당시 ‘제3공간 갤러리’의 큐레이터가 재미난 전시를 해보라는 권유를 배경으로 시작됐습니다. 멤버는 학력과 인맥을 떠난 여성도예가들로 구성됐습니다. 당시 멤버들의 말을 빌리자면 “그렇게 심오한 이슈는 없었다. 그냥 편하게 시작한 전시였다”라고 합니다.
우관호 흙의 시나위에는 태생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창단 멤버들이 아무생각 없이 모임을 탄생시켰다면 그 자체만으로 문제제기가 될 수 있습니다. 개인적인 소견으로 그간의 전시는 친목회, 동문전 이상의 성격이 없었다는 생각입니다. 조용히 뜻 맞는 사람들끼리 파티하는 기분으로 해온 전시가 아닌가하는 생각입니다. 기존회원의 탈퇴와 많은 여성작가들이 가입을 원하는 이유도 어쩌면 그것과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닐까요?
오은교 저는 지난해부터 흙의 시나위에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기존회원 중 몇 분이 제 주변의 지인이나 학교 선배였기 때문에 모임의 작품 경향이나 활동영역 등을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흙의 시나위의 주요활동이 1년에 한번씩 개최되는 일종의 친목 전시행사라고 느꼈습니다. 또한 전시를 하지 않더라도 수시로 만나 선배로부터 정신적인 도움을 받거나 의견교환을 할 수 있는 모임, 보여지는 것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받을 수 있는 모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신입회원으로서의 입장에서 그것들은 좋은 부분이었죠.
우관호 그것은 현재 국내에 남여를 떠난 작가들이 동질의 이념을 공유할 수 있는 모임이 없다는 의미로도 해석됩니다. 반면 최근 동문전도 거의 사라지고 있는 상황에서 15년의 모임 지속해 온 것과 함께 친목단체를 표방하고는 있지만 각 구성원 나름이 전업작가라는 점도 의미있다고 봅니다.
취미도예인으로 포진된 대학동문전은 모순이다
김종인 흙의 시나위가 표방하고 있는 “여류도예가만의 모임이다”, “학맥과 인맥을 떠났다”라는 두 가지의 이슈만으로 보았을 때 의미나 상징성에 관한 외부의 견해는 어떠합니까? 또한 외부에서 평가하는 흙의 시나위, 즉 여성도예가들만의 모임이라는 것이 갖는 의미는 단지 구성원의 색깔에 국한한 것인지, 아니면 여성작가들이 모였다는 것에 대한 기대치와 역할이 있다는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우관호 그 기대치는 흙의 시나위엔 취미생이 없다는 데 있습니다. 우선 대학 동문전의 가장 큰 모순은 취미생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 대학의 출신이기 때문에, ‘몇 회 동문전 참여’라는 한 줄의 기록을 남기기 위해 손쉽게 작품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 비춰볼 때 흙의 시나위는 적어도 각 구성원들이 전업작가로서 작업하기 때문에 상당히 진보적인 모임입니다. 국내대학 도예과의 여학생 비율은 90%이상이라고 봅니다. 도예과 여학생 중 졸업 후 작업을 계속하는 비율은 얼마나 될까요?
오은교 여대를 졸업한 제 견해로 봤을 때도 그렇더군요. 도예과 졸업생 중 일부가 대학원 혹은 유학을 선택하고 대다수는 결혼 등의 이유로 가정생활에 전념합니다. 그리고 5, 6년 후쯤 취미생 형식으로 컴백하게 되죠. 컴백방법은 주로 동문전 참여나 소규모 공방운영을 통해 이뤄지는 것 같습니다.
작업활동에 대한 확실한 신념이 필요하다
우관호 여학생들의 대학원 진학 이유 중 하나는 도피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졸업 후 취직과 결혼이 마땅치 않은 경우죠. 다음으로는 아이들을 어느 정도 키워놓고 우아하게 대학원을 다녀야겠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유럽이나 미국의 경우에는 50세가 돼서 학교에 입학하는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차별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분명한 것은 그 분들이 대학원에 들어왔을 때 작업하는 태도라든가, 작가로서 가져야할 작품에 대한 신념 등에서 엄밀한 차이를 보인다는 것입니다.
김종인 도예교육자의 입장에서 작업을 하는 데 남학생과 여학생의 차이가 불가피 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우관호 저 같은 경우엔 차별을 두지 않습니다. 가능하면 여학생들이 가진 여러 장점을 부각시키고자 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작업의 특성상 힘으로 하는 경쟁에서는 차이를 느낄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이슈 없는 전시의 공허함, 이제는 전문화된 기획력이 필요하다
김종인 흙의 시나위의 가장 중요한 매력은 학맥과 인맥을 초월해 어떠한 기류에도 편승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흙의시나위’란 이름은 70년 후반 학번들의 주요 문화였던 농악, 민속 등에 영향 받은 운동권적인 기질을 통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창립된 90년 당시 이 모임은 침체된 도예계에 대한 일종의 반란(?)이었습니다. 모임을 통해 “센세이션하다”라는 의미를 끄집어내고자 의도했던 것 같습니다. 특히 90년대 초반의 도자조형, 페미니즘 등이 활발히 진행되던 시기에 외국유학파 여성도예인들이 대거 귀국하여 흙의 시나위에 2기 격으로 참여하게 됐습니다. 이전까지 즉흥적 이슈로 전시를 구성해왔던 반면, 이들의 참여로 인해 여성성을 띤 전시로 그 성향이 변화되기 시작했죠. 그 대표적인 예가 ‘밥·부엌·여자’라는 여성성, 모성성을 주제로 한 전시였습니다. 당시부터 흙의 시나위의 이미지는 극성스러운 여자들, 페미니스트들이라는 인식으로 굳어졌죠.
우관호 제 개인적으로는 흙의 시나위가 열어온 전시의 작품성향에서 페미니즘을 읽기는 어려웠습니다. 여자를 만들었다고 해서 페미니즘은 아닙니다. 작가 자신의 작품에 대한 일관된 방향이 없지 않았는가, “어떤 때는 이렇게 또 어떤 때는 저렇게 한번 해보자” 라는 정도에 그치지 않았는가 생각됩니다.
구성원 각 개인이 가진 코드를 끄집어내지 못한 기획력의 부재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전시의 홍보에 있어서도 소극적이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전시도 마케팅입니다. 이번 15주년 전시의 경우, 유래 없이 돈을 들여(대관전) 전시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를 들어 전시를 앞두고 이 모임이 학맥과 인맥을 탈피하고 여성들만으로 어떻게 꾸려져왔다라는 것과 15년 만에 처음 남성작가들을 끌어들인 것에 대한 가십거리 등을 적극적으로 홍보했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윤두현 전시의 목적이 소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대중과의 공유를 위한 것이라면 홍보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성공적인 홍보는 단순히 금전적 수익과의 연결이라는 일차적 문제해결뿐 아니라 대중과의 공유, 교감을 통해 현대도예의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가능성이 담보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홍보는 작가가 대중에게 다가 가고자 하는 기본적인 노력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김종인 그 부분이 우리 모임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회원 각자의 개성이 강하기 때문에 작업에 열중하는 것 외에 전시를 위한 부수적인 행동을 어려워 한다는 것이죠. 또한 그런 모임의 구조적 특성상 주기적으로 새로운 리더를 찾아는 것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따라서 위계질서에 의한 응집력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지요. 이는 회원 모두가 다 주인이면서 어느 누구도 주인이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하죠.
우관호 전문 전시기획자를 활용하는 것도 새로운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도예계에서 전문적으로 전시를 코디네이팅 하는 전문인은 없었습니다. 이제는 실제로 도예를 전공하고 도예이론을 배운 도예전문 큐레이터들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또한 바람직한 경우라면 월간도예와 같은 관련 전문잡지사에서 전시회를 기획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생산적 담론과 적극적 소통의지로 대중에게 다가서야한다
오은교 창립 초기당시 멤버들은 유학파 여성도예가들로 소위 도예계의 젊은 스타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작업을 통해 많은 기를 뿜어낼 수 있는 역량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멤버들이 응집력을 발휘했다면 그 자체로도 주목을 받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젠 15년이란 기간 동안 활동을 지속해왔다는 점 때문에 이같은 문제 - 모임의 정체성에 대한 회의 - 가 더 크게 부각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모임을 통해 누군가와 교감하는 것으로 만족해하는 회원들에게는 그 사실만으로도 존재의 정당성이 충분한 모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몇몇 멤버들은 창립초기의 후광이나 의식을 알고 있기 때문에 더 자극적인 어떤 것을 찾고 싶어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구조적인 문제가 될 수도 있고 여자라는 것 자체로 인한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제 모임의 소형화, 제작방법과 작품의 이념에 따른 소그룹화와 같은 활용방법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요? 정체성이라는 이야기가 대두되는 것은 이제 무언가 바뀌어야 할 때가 온 것을 의미합니다.
우관호 모임을 15년간 지속해온 것에 대해 의미가 없다고 쉽게 판단하기 보다는 앞으로의 15년을 바라보고 도외시 된 부분을 찾아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사실 한정된 교육만을 받아온 도예작가들이 직접 아트마케팅, 언론홍보에 나서는 것은 현실상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탓만 하며 주저앉을 것이 아니라 그것을 위해 우리가 지금 노력하면 다음 세대에는 조금이라도 빛을 받기 쉽지 않겠나 하는 미래지향적인 해결의지가 절실하다고 봅니다.
김종인 이 시대에 맞는 흙의 시나위를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하겠네요. 1980년 후반에 만든 흙의 시나위 색깔과 2000년대에 만들어나갈 색깔이 달라야 한다는 것이겠죠. 대중과 함께하는 예술, 문화코드, 마케팅 등을 만들어 내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됩니다. 따라서 주변에서의 많은 관심, 제안, 제언들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 ‘흙의 시나위’와 대비되는 ‘흙의 사나이’들이 등장해야 할 시기라고도 생각되네요. 우리가 여성들이기 때문에 펼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한 적극적인 반론을 듣길 원한다는 의미입니다.
윤두현 이번 대담을 통해 드러난 것을 정리하면, 현재의 흙의 시나위가 새롭게 거듭나기 위해서 선결해야할 몇 가지 큰 과제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먼저 1차적인 과제는 멤버 각자가 스스로에 대한 비판적 자각을 통해 현재의 문제점을 철저히 인식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에 대한 인식이 있을 때 발전적인 해체가 가능하고, 결국 이를 통해 새로운 방향성을 정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는 대중과의 소통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방향성에 입각한 주제와 작품으로 개성적인 목소리를 만들어 냈다하더라도 이를 대중에 대한 적극적 다가섬을 통해 공론화 시키지 못했다면 존재근거 자체가 희미해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1차적 과제 해결과 함께 앞으로의 과제는 모임이 표방하는 주제를 함께 공유할 수 있도록 대중에게 다가서고자하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편으로 도예계 전체가 고민해야 할 부분이기도 합니다. 작가들 스스로가 먼저 현대도예 흐름과 방향성에 대한 철저한 비판적 자각과 인식을 갖고 도출시킨 창의적인 주제와 작품으로 생산적인 담론을 형성해야 합니다. 더불어 위의 문제들은 곧 도예전시기획전문가, 도예이론가 등의 인적자원을 양성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같은 사항들에 대한 자각과 실천이 전제됐을 때만이 본질적으로 한국 도예계가 현재를 넘어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발전적인 원동력을 얻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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