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예계 신 직업 창출과 전망
차세대 유망직업과 도예 - 도예전공자로서의 직업
글+사진 이항렬 _ 청강문화산업대학 도자디자인과 교수
우리는 장기적인 경기침체와 미술시장의 위축이 가져온 도자를 비롯한 공예전반의 위기에 대해 실감하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컴퓨터나 IT관련 산업에 비해 이 아날로그 한 도예라는 분야는 15,000년이나 되었음에도 만드는 방법은 크게 변한 것도, 크게 변할 것도 없다. 그러나 이 문화를 소비하는 형태는 계속 달라지고 있다. 따라서 이 변화를 이해하고 적응해 가는 것도 도예가의 몫이다.
도예가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부단한 노력 덕택에 국가 차원에서의 지원과 국민의 도자에 대한 인식변화, 굵직한 도자 이벤트를 치러내는 역량 등 이 분야의 미래를 위한 인프라는 많은 부분 갖춰져 있다. 그러나 정작 도자예술이라는 장르를 이끌어 가는 것은 도예가 개인의 역할이 크다. 따라서 도예가가 사회와 문화의 변화를 인식하고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은 한 국가의 도자문화를 발전시키는 일과 같은 것이다.
사실 도예가로서는 본인이 제작한 작품 혹은 도자제품을 경제활동의 수단으로 삼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도예가로서 전공을 잘 살리는 길은 반드시 전업작가가 되어야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도자문화의 생산과 소비는 시대와 역할에 맞게 변모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에 필자는 전공자로서의 모양새를 갖추면서도 개인의 개성과 역량에 맞게 선택할 수 있는 몇 가지 일을 제안하고자 한다.
푸드&테이블웨어 스타일리스트
스타일리스트란 본인이 직접 디자인을 담당하지 않고 제품의 오리지널리티를 재조정하여 필요로 하는 현실에 맞게 구성하는 사람을 말하며 디자이너와는 구별된다. 물론 패션 분야에서 많이 쓰이는 말이지만, 최근 생활 전반의 웰빙트랜드를 감안한다면 도자분야에서도 적용 되고 있다. 리빙트랜드의 변화는 푸드스타일링을 가르치는 학과가 개설되기에 이르렀으며, 그 명칭에서 볼 수 있듯이 음식의 데코레이션과 스타일링이 식생활 전반에 걸쳐 관심과 수요의 대상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푸드스타일링은 음식과 더불어 테이블 데코레이션 그 자체에 비중을 둔 경우로서, 필요한 소품들은 직접 제작하거나 매장에서 선택하여 구입하는 경우가 보통이다. 그러나 그릇의 제작을 직접 담당하는 경우는 드물며, 도예가에게 의뢰하거나 기성품 중에서 원하는 스타일을 선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푸드스타일리스트가 그릇의 디자인과 제작까지 소화할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힘든 경우가 많고, 따라서 그릇의 선택에 있어서는 비교적 덜 자유로운 편이다.
푸드&테이블웨어 스타일리스트는 일반적으로 쓰이는 명칭은 아니다. 오히려 필자가 그냥 지어냈다고 하는 편이 맞다. 테이블코디네이터, 푸드스타일리스트란 직업에 비해 이 분야는 아직 개척의 여지가 충분히 남아있다. 그릇을 디자인하고 창작할 수 있는 도예가라면 한 번 해봄직하다. 최근에 테이블웨어페스티벌 등을 통해 테이블코디네이션과 테이블웨어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이 많이 증폭되고 있다. 앞으로 일할 수 있는 여건은 좋은 편이다. 물론 도자전공자로서 그릇 제작을 위한 기본적인 소양 이외에도 각 나라별 음식문화, 기본적인 요리법, 테이블코디네이션 등 필요한 분야는 반드시 공부해야 할 것이다. 개성과 철학이 담긴 그릇을 만들되 그 그릇에 담길 음식과 그것이 놓일 테이블, 테이블을 장식하기 위한 한 테마의 소품들까지 고려해야 하므로 식문화에 대한 다양한 경험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한 분야의 스페셜리스트가 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에 가치 있는 일이다. 음식과 식공간 연출에 관심이 있는 도자전공자는 도전해 볼만한 일이다.
도자제품 전문 머천다이저Merchandiser
머천다이저Merchandiser는 약자로 ‘MD’라고도 한다. 상품이라는 의미인 ‘merchandise’에 ‘er’을 덧붙여 상품화 계획, 구입, 가공, 상품진열, 판매 등에 대 한 결정권자 및 책임자를 의미한다.
분야에 따라 다소의 차이는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MD는 정보분석 업무(어떠한 제품을 언제, 어느 정도, 어떻게 생산하는 것이 최적인지 판별하기 위한 시장정보, 소비자 정보, 트랜드정보, 판매실적정보 및 관련 산업정보 등의 분석)와 상품기획 업무(어떠한 소비자를 대상으로 상품을 기획할 것인가를 명확하게 설정하기 위한), 생산 업무(생산에 필요한 여러 문제의 검토), 판매촉진 업무(영업 담당자들에게 상품의 특성을 알려주고 판매의 촉진을 위한 계획 수립)등을 담당한다.
대량 생산과 판매가 이루어지는 산업도자 메이저업체를 제외하면, 도자공방에서는 주로 인테리어소품이나 테이블웨어 판매점의 주문에 따른 생산과 소규모의 자체 매장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도자제품의 생산과 마케팅까지 함께 담당하고 있는 경우다. 그러나 주변을 보면 좋은 품질의 도자제품을 생산하면서도 마케팅에 취약해 고전하는 공방들이 꽤 있다. 이런 경우라면 도자제품 전문 MD로서의 역할이 필요할 것이다. 공방에게는 더 많은 소비자를 획득하게 되는 기회를, 소비자나 도자제품 판매자에게는 더 다양하고 고품질의 도자제품을 제공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알고 있는 한 MD는 공방과의 계약생산을 통해 독특한 도자제품을 확보하고 있다. 공방에게는 안정적인 수입원을 보장하게 되며, MD로서는 일반적이지 않은 디자인의 제품군을 독점하게 되므로 win-win의 케이스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좀 더 보태자면, 도자제품 전문 MD는 그만의 스타일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한식기 전문, 일식기 혹은 퓨전스타일 전문 등으로 세분되거나, 현대적 혹은 전통성이 강한 제품, 유약과 장식에서의 개성 등 추구하는 스타일의 독자성을 겸비하고 있으면 더 좋다. 물론 테이블세팅에 대한 지식과 식문화와 식기 트랜드에 대한 이해도 있어야 하겠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경쟁력 있는 제품을 선별해 내는 안목을 갖추는 것이다.
이와 같은 분야의 일은 도자전공자가 하는 것이 더 어울린다. 도자전공자와 비전공자의 차이는 흙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마인드일 것이기 때문이다.
도자행사 전문기획자
근래의 도자관련 전문지를 보면 ○○페스티벌, ○○축제, ○○경연대회 식의 도자관련 이벤트가 예전에 비해 많이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한 개의 문화가 여러 지역에서 각 각의 독특함을 경쟁력 삼아 행사를 마련하는 분야도 드물 것이다. 이처럼 도자행사는 해당 지역의 특색을 잘 살리는 방향으로 기획되어야 한다. 특색이 없거나 두리뭉실하게 기획된 행사는 생명력이 없다. 각 지역은 도자에 있어서 저마다의 역사적 배경, 특정 장르, 혹은 특별한 행사 등을 바탕으로 그 색채가 결정된다.
보통 축제추진위원회 등이 행사의 주최자로서 이벤트업체와 계약을 맺고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만약, 한 이벤트 업체가 여러 지역의 다른 행사를 진행하거나, 같은 지역이라도 지속적으로 맡아서 진행한다면 매번 다양한 볼거리를 보여주기가 힘들 수도 있을 것이다. 관람객을 끌어 모으는 힘은 ‘변화’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관람객은 신선하고 새로운 것을 기대하기 마련이다. 어떤 도자관련 행사나 축제에서 예년과 같은 판매 부스나 제품, 비슷한 이벤트로 일관되어진다면 관람객의 무관심을 피하기 어렵다. 필자도 한 지역의 도자축제 운영위원으로 일해 본 경험이 있으며, 매번 비슷한 형태로 반복되는 행사 분위기 탓에 관람객이 불평을 하는 경우를 경험한 적이 있다.
앞서 말한 두 분야가 개인이 활동할 수 있는 형태라면 이 분야는 팀웍을 필요로 한다. 예를 들어 한 행사의 특징을 결정짓는 색채, 행사장의 배치, 홍보에서 결과분석, 이벤트의 수와 형태, 관람객을 위한 서비스 등 많은 분야를 책임져야 하므로 개인이 하기에는 어렵고 팀 단위가 적합하다. 도자관련 전시회, 이벤트성 행사, 판매부스 기획, 홍보 및 디자인 등으로 업무 분야를 세분화시키면 더욱 전문성을 살릴 수 있으며, 작은 팀의 특성상 순발력 있게 업무에 대처할 수 있게 된다. 많은 경험을 가진 전문성을 갖춘 팀이 발휘하는 힘은 매우 크며, 특산물로서의 도자기를 보유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가 있는 한 지속적인 수요를 만들어 낼 것으로 생각된다.
이 분야의 일도 앞으로 도자전공자가 개척해 나갔으면 한다. 적어도 도자전공자는 우리의 도자문화에 대한 책임과 소명의식은 갖추고 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그 외 건축·환경도자 전문 제작자, 도자제품 전문 디자이너 등
도자제품류는 물리적, 화학적으로 안정된 특성 때문에 건축재료로도 많이 쓰이고 있으며, 최근 청계천 복원사업에 대형 도자벽화가 설치되는 등 앞으로도 관심과 수요가 늘 것으로 기대된다. 건축이나 환경미술 분야로서의 도자는 예산규모가 비교적 크기 때문에 전공자라면 누구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작업장의 환경 여건이나 개인의 작업 성향, 사업의 수주를 위한 통로 등 여러 부분이 해결되어야 하므로 이 분야 역시 팀으로 움직이면 유리하다. 실적이 쌓이면 차기의 사업도 획득하기가 비교적 쉽기 때문에 작은 규모라도 도전해 볼 것을 권한다.
이밖에도 유럽이나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뒤쳐져 있는 도자디자인 부문도 개척할 만한 분야이다. 중소기업의 경우에는 디자이너를 지속적으로 고용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으므로 프리랜서 형태의 도자디자이너를 필요로 한다. 필자가 속해 있는 대학과 산학협정을 맺고 있는 상당수의 도자관련 업체는 디자인의 아웃소싱을 원하고 있으며, 지금까지는 대학이나 제품디자이너가 그 역할을 담당하여 왔다. 이 분야에 관심이 있다면 도자제품 디자이너로서 특화된 전문성을 갖추고 경험을 쌓아 나가기를 바란다.
지금까지 도자전공자로서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있는 몇 가지 직업에 대해 살펴보았다. 위의 것들은 사실 필자의 희망을 반영한 것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어서 매우 조심스럽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사회의 모든 분야가 그렇듯이 새로운 트랜드가 계속 등장하며, 이를 주도하는 더욱 세분된 분야의 전문가를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도자전공자로서, 도예가로서 그 정체성과 품위를 유지하는 방법은 부단한 연구와 노력, 인내와 사명감뿐이라 생각한다. 도예가라면 누구나 느끼고 있는 이런 힘든 상황에서도 여전히 좋은 작품은 잘 팔리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약력
도예가
2001세계도자기엑스포 행사부 프로듀서
청강문화산업대학 리빙세라믹디자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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